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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34

11

2009-May

충남 보령 성주사지

작성자: [레벨:16]한국의 산하 IP ADRESS: *.208.195.249 조회 수: 8293

위치 : 성주산(513m) 충남 보령시 미산면 성주리
            대천 해수욕장에서 동남 방향으로 3~4km 전방에 보이는 산이 성주산.
            성주산 능선은 3개의 산이 있음, 만수산(590m), 제1 성주산-장군봉(680.4m), 제2 성주산-왕자봉(513m)
            성주사지는 제2 성주산(왕자봉)에 위치하고 있음

찾아가는 길 : 대천 IC에서 공주 방향으로 성주 터널을 지남, 성주 터널을 지나면서 300~400m 내려간 뒤 좌측으로 성주사지로
                    향함. 300~400m 계곡을 따라 올라감

문화 유적 : 국보(國寶) 제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보光塔碑)
                 보물(寶物) 제19호 오층석탑(五層石塔) 
                 보물(寶物) 제20호 삼층석탑(三層石塔) 
                 보물(寶物) 제47호 서삼층석탑(西三層石塔)

관련 사이트 ; http://www.boryeong.chungnam.kr/


공주 방향에서 보령시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성주산 터널을 지나야 한다. 동에서 서로 가는 방향이다. 성주산 밑자락에 당도했을 때는 성주산 너머에서 태양이 약간 걸쳐 있는 정도였다. 밑자락에서는 어둠을 준비하려는 듯 회색 빛깔의 기운이 땅거미로 내려 앉아 있었다. 보령을 지나 서산 혜미 읍성으로 가려 했으나, 날이 이미 저물어 가는 중이었다. 대천 해수욕장으로 가려는 요량으로 잠시 성주사지에 들러기로 했다. 이곳은 예전 교수님과 함께 잠시 다녀간 곳이었다. 사람들은 곧잘 보령 하면 대천 해수욕장을 떠올린다. 해수욕을 즐기고, 지는 해를 바라보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기 위해서 대천을 많이 찾는다. 대천 해수욕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해수욕장 근처에 큰 사찰이 있었고, 문화재가 많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하는 것 같다. 예전과 같이 이곳을 찾았을 때, 사람들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적막감이 감돌았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기 위해 경주에서 이곳까지 여정이 어떠했을까, 그리고 이곳에서 당나라로 가기 위한 뱃길은 어떠했을까, 최치원은 이곳까지 와서 비문을 새겼는데, 당나라로 길을 떠나는 와중에 여기에 들러서 비문을 새겼을까 아니면 돌아오는 길에 새겼을까?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이리 저리 방황을 해보지만, 내가 배웠던 그 시대의 역사의 편린을 찾아서 퍼즐 조각을 맞추듯 역사를 궤어 보지만, 온갖 상념들을 동원해 그 시대의 이 사찰을 떠올려 보지만, 내 지혜의 얕음을 한탄해야 하는가?

2년전 이곳을 찾았을 때는 오전 햇살이 비추이면서 약간의 비가 사지의 잔디를 촉촉히 적시고 있었다. 낭혜화상백월보광탑을 보수하는 중이었다. 주위가 산만했는데, 지금은 깔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문화재를 찾을때마다 내게는 늘 동일한 질문과 대답이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이며,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역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면서, 다른 나라가 역사를 왜곡할 때, 분개하면서 탓을 하는가? 역사학도만이 역사를 알아야 하는가?

경제와 역사 간의 관계는 어떠한가? 누군가 얘기했듯이 "바보야, 이제는 경제야"라는 문구가 떠오른다. 경제가 성장하고 발전하지 못하면 역사 문화재를 돌아볼 여유가 있을까? 그나마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재가 하나 둘씩 복원해 가는 것은 우리나라에 부가 많아졌다는 얘기다. 먹고 살기 힘든 마당에 역사가 다 무엇이란 말인가? 90년대 이후 들어, 문화재 복원 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그렇다. 모든 것은 경제로 시작하고, 경제로 끝이 난다.

경제가 발달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면, 그에 비례하여 군사력이 증대되어야 한다. 이는 곧 성장하고 발전된 사회를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 곧 군사력이다. 경제는 선택 수단이 아니고 생존 수단이다. 군사력은 어떠한가? 이것 역시 생존 수단이다. 이것들이 해결되고 나면, 그때서야 복지 문제나 역사 문화 문제 등이 사회의 이슈로 등장하기 마련이다.

타국이 군사력을 증대하면, 우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우리 역시 방어 차원에서 군사력을 증대시켜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복지 문제와 역사 문제로 자원이 할당되어야 하는데, 어느쪽으로 먼저 우선 순위를 두고 배정해야 할까? 이것은 시대정신과 지도자의 세계관과 맞물려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한국사회는 복지 문제에 더 많은 할당을 하라고 요구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문화재 복원 사업도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한가하지가 않다. 재원이라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어느 한쪽이 많이 지출되면, 다른 쪽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다. 나의 관점은 문화재 복원 사업이 먼저인것 같다. 복지 문제는 한 세대가 참고 지내면 되지만, 역사 문제는 한 세대가 아니라 몇 세대에 걸쳐서 나타나는 효과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바로 세운다는 것은 "지금의 이 세대가 다른 나라에게 외침을 당하지 않도록 현실을 준비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다". 과거를 청산해야 할 것이 아니라, 과거를 보듬어 안고 가야 한다. 일본인에게 배상을 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우선 순위로 스스로 배상을 하게끔 우리나라의 경제력과 군사력, 문화력을 키우는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 이것이 역사에서 배우는 지혜가 아닐까?

2005년 3월 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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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國寶) 제8호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朗慧和尙白月보光塔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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