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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09-Nov

1부 세계1차대전, 그 위대했던 전쟁

작성자: [레벨:30]조현상 IP ADRESS: *.180.69.60 조회 수: 10662

1부 / 세계1차대전, 그 위대했던 전쟁

 

 

세계1차대전은 [The great war] 라고 불린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은 단지 [World war II] 일뿐이다. 

왜 세계1차대전만 The great war인가?

 

지금부터 알아보자.

 

1차세계대전의 시작은 일단 제국간의 충돌, 각국과의 마찰이 이어진것이다. 당시에 결성된 3국동맹국은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오스만 제국이었다.

 

독일은 독일대로 해외식민지들을 프랑스,영국등이 나누어 먹으니까 화가난것이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사라예보에서 건방지게 한 청년이 제국의 황태자부부를 저격해서 화가 끝까지 나서 전쟁을 벌인것이며 오스만제국은 19세기 들어서 자국치하에 있던 여러 중동국가들이 독립의 기세를 보이자, 이참에 그 기세를 꺾고서 국가를 발전시켜보자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연유가 있던것이다.

 

1차세계대전때는 상당히 진보된 과학기술들이 나와서 도움을 주기도 하였지만 악효과가 사실은 더 많았다. 1차세계대전의 발발은 1914년, 오스트리아 제국 치하에 있던 유고슬라비아의 '사라예보' 에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태자 부부가 방문을 하였는데, 군중사이로 한 세르비아 청년이 그들을 저격한것이다.

 

쉽게 말하면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역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한것과 똑같다고 보면된다. 자국의 나라를 침범한 나라의 황태자요, 곧 국가의 적이기 때문에 사살을 한것이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제국은 이를 이유로 세르비아에게 선전포고를 하였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은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끄는 거의 굉장한 파워를 가지고 있는 국가였다. 오스트리아, 체코슬로바키아, 이탈리아 북부, 유고슬라비아의 절반, 루마니아의 80% 그리고 러시아의 땅 약간, 이렇게  엄청난 크기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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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이다.

 

이 어마어마한 영토를 보아라.

유럽의 강대국 오스트리아 제국, 그러나 이 제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상당히 골치아팠다.  일명 '발칸의 화약고' 라고도 불리는 이 제국은 너무나도 다른 민족들이 섞여있었기 때문에 언제 민족분쟁이 터질지 모르는 그런 초조한 사태였다.  그러나 바로 그때, 사라예보 사건이 터진것이다.

 

이렇게 1차대전이 사라예보사건을 계기로 터졌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지 전쟁의 규모는 '오스트리아 : 세르비아' 의 전쟁일 뿐이었다.

그러나, 이 전쟁을 더 크게 불린것은 바로 '러시아제국' 이었다.  러시아제국이 세르비아를 도와준 까닭은 단지 슬라브인을 도와주기 위해서라는것이다,  다시말해, 세르비아는 러시아와 같은 슬라브 인이었고, 러시아는 같은 인종을 도와줘야된다는 조금 어이없는 생각으로 참전한것이다.

 

그러나 사실 러시아는 유럽을 먹고싶었던 야망도 있었기 때문에 이를 좋은 구실로 잡아서 참전을 한것이다.  세르비아가 러시아의 힘을 얻자, 난처해진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었다. 그때 독일이 같은 게르만인을 도와주자면서 참전한것이다.  오스트리아를 지원한 독일은 마침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고 싶기도 하고,러시아를 몰아내고 싶기도 하였기때문에 이를 계기로 참전을 하였다.

 

1차대전같이, 하나하나 이웃나라를 끌여들이는것을 바로 '외교전' 이라고 불린다. 이렇게 보면 양측모두 2:2 상황인데, 이때 갑자기 이탈리아가 독일편에 선다.  프랑스를 공격하기 쉽고, 오스트리아와도 붙어있어서 좋은 지형에 있던 이탈리아가 참전한것은  동맹국 (독일,오스트리아) 측에서는 아주 좋은일이었다.  3:2로 전세가 역전되자, 이번에 참전한것은 독일의 팽창을 두려워했던 대영제국과 프랑스였다.

밖으로 세력을 과시하기위해 점점 팽창하는 독일을 막기위해서 대영제국과 프랑스가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이란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1차대전이 드디어 시작이 되었다.

독일은, 재빨리 프랑스를 침공하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계획은 '슐리펜' 장군에 의해서 작전이 만들어졌다.

 

일명 '슐리펜 계획 (Schliffen Plan) ' 이라 불리는 이 작전은 네덜란드는 치지 않고 벨기에와 룩셈브루크의 국경을 넘어서 프랑스로 내려가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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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제 슐리펜계획의 작전 구상도.

 

네덜란드는 조용히 넘어가고 급한대로 벨기에와 룩셈브루크를 격파시켜서 프랑스로 재빨리 내려간다는 이 계획은 실제로 실행이 되었다.

 

사실 이 슐리펜계획은 정말 쉽게 진행이 되었다.

벨기에나 룩셈브루크는 독일의 상대가 되지못했다.

프랑스의 국경을 넘은 프랑스는 황급히 전투태세에 돌입하였다.

대영제국의 군대들도 플랑드르에 원정군을 상륙시켰다.

벨기에는 1914년 8월14일, 점령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1914년 9월초, 프랑스에서 '마른' 전투가 시작이 되었다.

 

이때 좋은소식이 하나 생겼는데, 오스만제국이 10월, 동맹국에 서버렸다.  오스만제국은 러시아와 중동지역에 있는 연합군을 맹렬하게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한편, 동부전선에서도 전투가 일어나기 시작했는데 당시 독일령 동프러시아 전선에 러시아군이 동프러시아 주둔 독일군을 괴멸시키기 위해 어마어마한수의 병력을 투입시켰다.

 

독일의 장군들은 이 동프러시아 주둔 독일군들 몇만명을 살릴방법이 없고, 몇십만이 넘는 엄청난 러시아군을 이길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말에 반기를든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힌덴부르크' 장군이다.  힌덴부르크는, 직접 동프러시아로 찾아가, 사기가 떨어져있던 독일장병들을 직접지휘했다.

 

그리고, 엄청난수의 러시아군들이 숲에서 독일군 방어선쪽으로 물밀듯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로써 '타넨베르크' 전투의 막이 올랐는데, 이 전투는 가면갈수록 이상하게 러시아군의 피해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힌덴부르크는 뛰어난 전술을 이용해여, 자신들보다 열배이상이 되는 러시아군을 대패시켰고, 숲에있던 러시아군의 진지까지 공격하여 항복을 얻어버리고 만다.

 

이 '타넨베르크' 전투때문에, 힌덴부르크는 그의 실력을 독일에서 인정받았고, 반대로 러시아는 이 전투때문에 육군전력에 굉장한 타격을 입고말았다.  동프러시아 전선에 대다수의 병력을 투입했던 러시아는, 이들이 거의 괴멸상태로 후퇴하자, 오스트리아와 발칸전선에있던 병력들을 황급히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을 쫓아 독일군과 오스트리아군이 맹렬하게 러시아군들을 추격했다.

 

러시아군들의 사기는 날이가면갈수록 떨어졌고, 보급품마저 엉터리로 오는바람에 굶어죽는병사들이 속속늘어가고 있었다.  결국 탈영병들이 등장했고, 러시아군은 왜 자신들이 싸워야하는지, 왜 조국과 관계도없는  전쟁에 끼어야하는지라는 생각을 갖으며, 오히려 조국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로 내려가던 독일군은 파리에 가까워지는가 싶었지만 곧 밀리고 밀고 가는 전투가 계속되었고, 결국 이는 '참호전' 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참호전은 교착상태를 만들었다.

서부전선은 참호때문에 교착상태에 빠져버렸고, 동부전선은 러시아 본토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멀어지는 보급로때문에 빠른진격이 어려웠기때문이다.

 

 

1915년 들어서는 전선상태가 완전히 교착이 되었는데  사실상 거의 전쟁을 하고있지 않았다.  더군다나 북프랑스의 잔혹하기 그지없는 날씨는 병사들을 더욱 괴롭게 만들었다.

 

거의 매일같이 비가오고, 덕분에 파놓은 참호는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병사들은 진흙과 함께 생활을 했고, 비위생적인 환경과 주변에 널려있는 전우와 적의 시체들에게서는 쥐와 파리떼가 들끓었다.

쥐는 설상가상으로 번식력이 어마어마해서 참호안에는 쥐로 득실거렸는데, 이는 병사들에게 질병을 안겨주었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하였다.

 

진흙이 이정도로 끝난다면 별로 큰문제는 되지않지만, 문제는 이 진흙이 사람의 목숨조차 앗아간다는것이다.  바로 진흙수렁에 빠져서 죽는것이다. 북프랑스의 한 영국군중대에서는, 독일군에 대한 착검돌격이 실패하자 살아남은 자들을 다시 재 편성하는 과정에서 적의 참호와 아군참호사이에 있는 황무지에 부상병들이 버려졌다는 사실을 뒤늣게 알게되었다.

 

황무지에서 적의 총에맞아 안간힘을 쓰며 본부로 돌아가려는 부상병들은 진흙을 헤치며 겨우 본부로 몸을 기었지만, 폭탄구멍에 가득차있는 진흙수렁에 빠져서 죽는 사례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끈적끈적하고 깊이조차 깊은 진흙수렁에 빠진 부상병들은, 나올수 없음을 인식하기도 전에 천천히 빨려들어가 죽게 된다.

 

특히 이런사례들은 영국군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영국군이 항상 않좋은 장소에 참호를 세웠기 때문이다.  독일군은 언제나 공격자이자 방어자였기때문에, 참호를 파기 아주 좋은장소를 선택할수있는 '우선권' 이 주어졌고, 그 다음에는 자국을 지키려는 프랑스군들에게 참호파기 좋은장소를 빼앗기고, 뒤늣게 영국본토에서 달려온 지원군인 영국군은 가장 쓸모없는땅을 선택할수밖에 없었다.

 

이 영국군참호에서는 20~30cm만 땅을파면 어김없이 지하수가 올라왔고, 심지어는 무릎까지 물이 차오르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이런 추위와 진흙, 물과의 사투에서 패배를 인정한 영국군 부대 몇몇은 독일군과 전투를 해보기도전에 철수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만다.

 

 

이렇게 서부전선은 마치 고요하게도 전쟁을 거의 하고있지 않았다.  가끔 이루어지는 소규모 공새만 빼고말이다.

그러나 이렇게 참호에 틀어박혀 나오려 하지않는 연합군들이 위해, 독일은 어마어마한 살상력을  가진것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생화학무기 즉 '가스(Gas)' 였다.

처음으로 독일이 이 가스탄을 쓴것은 1915년 4월22일 이프르 제 2차전투때였고, 희생자들은 프랑스의 식민지 연대였다.  독일이 처음으로 이것을 발사하자마자 연대급의 병사들은 마치 인형처럼 픽픽 쓰러졌고  겁에 질려버린 병사들은 총까지 버리고 완전히 달아나버렸다.  그리고 그 이후로는 프랑스와 영국 양국 모두 생화학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이 생화학탄은 간단했다, 병에 가스를 담아서 바람이 적진영으로 불때  병을 열어서 흘려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변덕스러운 날씨에 바람이 언제 바뀔지도 몰라서 언제나 독가스는 위험했다. 그리고 개발된것이 독가스 탄인데 이것은 말그대로 발사시켜서 적진영으로 아예 보내버리는것이다.  이 역시 엄청나게 많은 인명피해를 낳게한 결과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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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맨위) 독일이 개발한 독가스때문에 눈의 각막이 녹아버려 시력을 잃어버린 영국군들이 체념한체 앞사람의 어깨를 짚어가며 행군하고 있다.

△(아래) 서부전선에서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는 프랑스군들의 모습

 

 

독일측에서는 자신들의 희생자를 줄이고자 독가스를 개발한것은 잘한것이라고 했지만 결국 이 가스탄은 양측모두에게 엄청난 피해를 낳았을 뿐이었다.  이것이 개발된 계기는 석탄에서 암모니아를 추출하는 기술이 개발되어서 이를 계기로  가스가 만들어진것이었다.

독일군은 더욱더 강한 가스탄을 만들기 위해서 여러가지를 개발하다가 '겨자가스' 라는것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훨씬더 강력한 무기였다.

 

1차세계대전때, 북프랑스 주둔 미군의 5만8천명중 약 3만명이 이 겨자가스에 의해서 천천히 죽어갔다.  맨체스터 연대에서 복무했던 시인 윌프레드 오웬은 가스탄에 노출된 병사를 보면서 절망하며 시를 썼었다.

 

「 하얀 눈이 그의 얼굴에서 희번덕거리네, 죄악으로 몸부림치는 악마처럼 그의 얼굴이 떨고있네. 그대, 맥박 소리 들리는가?  포말로 오염된 허파를 씻어내게, 암처럼 지긋지긋하고, 토사물처럼 쓰디쓴 순결한 혀의 치료할 수 없는 상처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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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데스워치(Death Watch) 중 한장면, 독일군측에서 살포시킨 독가스로인해서 영국군이 맥없이 쓰러지고 있다.

 

 

겨자가스는 12시간이 되기 전까지는 그 증상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12시간후에는 살이 점점 썩기 시작하고, 피부에는 누런 물집이 생기고 눈이 점점 심하게  고통스러워지다가 결국 각막이 녹아버려 앞을 못보게 되고 욕지기와 구토가 시작되고서 기관지를 침범한 독가스가 기관지의 점막을 벗겨내기 시작하는데, 이 고통은 거의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다. 결국 군의관들은 미친듯이 발악을 하는 환자들을 침대에 밧줄로 꽈악 묶어두어야만 했고, 희생자는 4-5주동안 이 상태로 있다가 결국 죽게된다.

 

1차세계대전때의 공포의 3인조라고 하면 당연지사  「 철조망 」「 독가스 」「 기관총 」 이다.  이중에서 철조망도 사실 엄청나게 위험했다.  1차대전의 실상을 양측이 참호를 파고서 교착상태를 유지하다가 침범당한 국가측에서 영토를 되찾기 위해서 상대 참호로 돌격을 시킨다.  그러나 침범당한 국가측은 당연지사 프랑스고, 그 돌격을 막는것은 거의 언제나 독일이었다.

 

그러나 현대화된 무기앞에서 보병의 돌격은 완전히 무의미했다.  설령 그것이 기병대가 돌격을 하는것이라고 해도 말이다.  공격을 하려면 반드시 방어측보다 훨씬더 많은 군대가 있어야된다.  특히 1차대전에서는 말이다.

거의 대부분은 '중대' 급의 병력들을 돌진시키는데 대체로 약 200명내지 300~400백명이 돌진할때도 있었다.  앞에는 총검을 달고 무조껀 상대참호로 돌격을 하는것인데 성공할것같은 이 돌격은 절대 아니다.

이 무섭게 돌격해오는 300명을 막는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총알이 넉넉한 거치식 기관총 단 두세대면 끝이다.  공격측에서는 장교가 제일먼저 참호밖으로 나와서 권총을 공중에 발사하면서 호루라기를 분다.  그러면 모두가 계단을 이용하여 참호밖으로 다 뛰쳐나와서 야수처럼 돌격을 하는데  이런 가엾은 사람들은 단 거치식기관총 두대에 의해서 깔끔하게 사라진다.

 

거기에, 야간돌격을 할경우에는 철조망에 살점이 찢어져서 죽기도 한다.  겁을 잃고, 이성을 잃은상태로 총검만 내빼고 적을 보면서 돌격을 하다가 얼굴에 철조망이 걸리면 그대로 죽는것이다, 설령 옷이 걸려서 운좋게 죽지 않아도 머지않아 철조망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게되는것이다.

다시말해, 적을 공격하려면 거치식기관총을 제압하기 앞서, 철조망부터 제거해야된다는 말인데 철조망 제거를 하는것은 간단하게 보병들이 전부 돌격할때, 선두에 한명만 니퍼를 주고 돌격을  시킨다. 총든 보병들 사이에 섞여서 그는 철조망을 자른다.  안타깝게도 다른 보병들이 어이없게 목숨을 마구 버리고 있을때 그는 재빨리 풀어야만 했다.

이렇게 중대가 전멸하면 항상 다음중대가 돌격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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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데스워치(Death Watch) 중 한장면, 영국군이 독일군 참호로 돌격하던 중,

중대장이 철조망에 걸려서 죽어가고 있다.

 

 

유명한 참호전투로는 '갈리폴리' 전투가 있는데, 이것은 호주와 뉴질랜드군과 터키군 사이에 일어난 아주 유명한 참호전투이다.  터키의 갈리폴리 반도에 들어온 호주와 뉴질랜드군은 일단 무작정 대군을 상륙시켰지만, 험난한 터키의 지형에 막막해 하고 해안에서 기지만 설치하고 공격을 못하고 있었다. 이때 터키가 지혜롭게 갈리폴리에 병력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터키군은 유명한게 바로 '저격수' 인데, 터키의 저격수는 아주 베테랑들이다.  연합군은 참호속에서도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말아야했다. 언제 자신의 머리가 날라갈지 모르기때문이다.

 

이 갈리폴리 전투에서 한 부사관은 날씨좋은 터키의 풍경에 심취해서 잠시 머리를 들었다가 단 1초도 안되서 바로 머리에 저격을 당했는데, 자세히 보니 머리에 총알 구멍이 3개가 있는걸로 보아서는, 같은시각에 무려 3명의 저격수가 같이 발사한것이다.

 

이런 유명한 저격수는 독일에도 존재했다.

발터슈미트 (Walter Schmidt) 라는 이름의 특급저격수는 서부전선에서 혁혁한 공을 많이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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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갈리폴리(Galipoli) 의 한장면, 저렇게 모든 호주&뉴질랜드군은 총검을 앞에달고 터키군 참호로 돌진을 시켰다. 이것은 돌격하기 단 몇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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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의 사진을 보면 터키군이 호주군을 향해 발사하고 있는것인데, 거치식 기관총이 보인다. 사실 자세히 말하자면 Maxim(맥심) 기관총이다.  그런데 이상한점은 터키군의 거치식 기관총 하나와 단 몇십명의 터키소총수들에 의해 몇백명이 제압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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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청난 수의 호주군을 단 소총수 몇십명과 거치식기관총병 한명으로 막고있는 터키군의 모습.

 

 

갈리폴리전투는 호주와 뉴질랜드군의 완벽한 '대패' 였다.  터키군도 사실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는데, 결과는 연합군의 대패중에 대패였다. 터키군을 너무 만만하게 본 까닭과, 빨리 러시아와의 연락을 가능하게 하기 위함이 우선시되었기 때문에 대대장, 연대장같은 사령관들은 전선상황을 알지못했다.

그리고 호주군은 너무 자꾸 공격일을 미루었기때문에 터키군에게 병력을 보충할수있는 시간은 아주 '넉넉히' 주고말았다.  게다가 터키군은 사전에 해엽에 기뢰를 설치해가지고 연합군의 전함은 6척이 대파되고 말았다.

 

 

1915년, 불행한소식이 하나 전해졌는데 이탈리아가 비밀리에 연합국측으로 서버렸고, 동맹국에 선전포고를 한것이다.  사실 이탈리아가 이렇게 마음을 바꾸게 된것에 대해서는 그만한 보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측은 이탈리아에게 지금 연합국측으로 서준다면 승전시, 짭짤한 보상을 많이 주겠노라고  말해주었다. 이 짭짤한 보상이란 바로, 오스트리아 땅을 뚝 떼어주겠다는것이다.

 

가뜩이나 이태리 북부를 찾고싶은데, 아예 인스브루크까지 뚜욱떼어주겠다는데 이탈리아는 얼마나 솔깃했을까.

이탈리아는 이말을 듣고 당장 연합국측으로 섰지만, '카포레토' 전투에서 이 자만심의 처참한 대가를 치루게 된다.

 

몇십만의 이탈리아군이 단번에 오스트리아군을 공격했지만, 소수였던 오스트리아 산악군대에게 거의 괴멸적인 타격을 입고 본토로 퇴각한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사기가 떨어지고 부상을 당한 병사들은 알프스를 내려오던중 또다시

무수한 수가 죽었고, 산을 내려오자 산을 점령했던 오스트리아군의 야포공격과 보병공격에 시달리고 만것이다.

 

이태리는 다시 야포지원을 받은 엄청난 수의 보병공격으로 오스트리아를 공격했지만 그때마다 몇 안되는 오스트리아제국군에게 번번히 패배를 하고말았다.

 

사실, 이탈리아 자체가 워낙에 약했기때문에 동맹국에 섰을때나 연합국측에 섰을때나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았다.

프랑스는 단지 이탈리아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 가는 길목으로밖게 이용 한거라고 봐도 된다.

 

 

1916년에 들어서는 프랑스 전선에 대한 공세가 점점 시작되었다.  2월, 독일은 프랑스의 베르뎅 요새를 공격했는데 이때 독일군의 사상자는 50만명이었다.  그리고 그곳에 소비된 군사물품만해도 몇백톤이 거뜬히 넘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페탱장군에 의해서 요새는 지켜졌으며, 프랑스와 영국군은 이 기세를 몰아서 솜강에서 반격을 시작됫는데, 의외로 이번에는 연합군의 사상자가 많았다.

 

 

 

 

2부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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