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 5
강화산성 4
강화산성 3
[국보 제2호] 서울 원각사지 십층석탑
- 탑골공원에는 우리나라 국보 제2호로 지정된 원각사지 십층석탑이 있다. 탑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 원각사지 십층석탑圓覺寺址十層石塔 현재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은 예전 원각사였다. 원각사는 1465년(세조 11년)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
사직단
-사직단 ◈ 사직단社稷壇(사적 제121호) 국가를 유지하고 민생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토지와 곡식이 무엇보다 우선한다. 이러한 이유로 고대에는 국가와 민생의 안정을 기원하고 보호해 주는 제사를 지냈다. 제사는 단壇을 쌓아 그곳에서 지냈는데, 토지의 신(사社)과 곡식의 신(직稷)을 모셨다. 이 두 개의 신을 단에서 모셨다 해서 사직단社稷壇이라 한다. 사직은 왕실의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종묘와 더불어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시되었다. 이 둘을 가리켜 종묘사직이라 하며, 국가를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사직단은 도성 이외...
남양주 홍유릉(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나라를 잃은 뒤 황제국이면 무엇하겠는가! ◈ 홍유릉洪裕陵 홍릉은 조선 제26대 왕이며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재위 1863∼1907)과 비 명성황후 민씨(1851-1895)의 동봉이실 묘소이고, 유릉은 조선왕조 마지막 왕인 제27대 순종(재위 1907-1910.8)과 순명효황후 민씨, 순정효황후 윤씨의 묘소이다. 홍유릉은 조선의 다른 왕릉과는 달리 황제릉 형식으로 되어 있다. 황제릉으로 조성된 홍유릉은 기존 조선왕릉과 석물의 종류와 위치, 숫자가 다르며 정자각 대신 일자각 침전이 자리하고 있다. 또한 유...
서초 헌인릉(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죽어서도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이 태종우太宗雨에 담겨있다! ◈ 헌인릉獻仁陵 헌인릉은 조선 제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헌릉, 조선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그의 비 순원왕후 김씨(1789-1857)의 능인 인릉이 자리 잡고 있다. 태종은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째 아들로서 아버지를 도와 조선왕조를 세웠으며 1ㆍ2차 왕자의 난에 승리하여 왕위에 올라 조선 왕조의 기반을 다진 인물이다. 순조는 태종 즉위와 정확하게 400년 차이가 나며, 능 조성 시기는 436년 차이가 난...
강남 선정릉(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 조선 부흥기를 이끌었던 성종(선릉)과 아들 중종(정릉)은 7년 전쟁 때 일본인들이 파헤쳐 시신이 없어져 버렸다. ◈ 선정릉宣靖陵 서울 강남에 위치한 조선왕릉에 가면 가슴이 무너지는 슬픔을 맛볼 수 있다. 나라가 왜 강해져야 하며, 위정자들이 왜 정치통합을 해야 하는지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은 1592년에 발발했던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592-1598)으로 말미암아 왕릉이 파헤쳐져 시신이 없어어지는 통분의 상처를 입었다. 이 곳에는 조선 제9대 성종과 그의 계비 정현왕후 윤씨의 ...
고양 서오릉(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2]
-영조의 정성왕후에 대한 사랑은 내세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텅 비어있는 공간이 쓸쓸하다. ▣ 경릉敬陵 경릉은 조선 제7대 세조의 맏아들인 의경세자가 묻혀 있는 곳이다. 의경세자는 1455년(세조 1)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인 1457년 20세에 요절하고 말았다. 의경세자는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으나 이후 그의 둘째아들이 제9대 성종이 되면서 1471년(성종 2)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왕으로 추존된 덕종(1438-1457)의 부인이었던 소혜왕후는 47년 후에 숨을 거두어 이곳에 묻혔다. 소혜왕후(1437~15...
고양 서오릉(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1
- 서오릉에는 조선왕조 최초의 '원'인 순창원이 있다. - 서오릉에는 숙종의 행복과 슬픔이 동시에 서려 있다. 첫째, 둘째, 셋째 부인 모두 이곳에 있지만, 세 번째 인현왕후와 정적인 희빈장씨 묘도 있다. ◈ 고양 서오릉西五陵 고양 서오릉은 5개의 왕릉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오릉 지역이 무덤지역으로 선택된 이유는 1457년(세조 3)에 세조의 맏아들 의경세자 장(덕종)이 1455년(세조 1)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즉위하기 전에 사망하자, 풍수지리설에 의해 경릉이 들어서면서 부터이다. 서오릉은 의경세자 추존왕 덕...
고양 서삼릉(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고양 서삼릉에 가면 효성이 지극했던 인종과 세계 정신을 습득했던 소현세자를 만날 수 있다 ◈ 고양 서삼릉西三陵 서삼릉은 조선 제11대 중종의 계비 장경왕후의 능인 희릉과 제12대 인종과 그의 부인 인성왕후의 능인 효릉이 들어서면서 왕릉군이 된 곳이다. 이후 주변에 후궁이나 대군, 공주의 무덤이 조성되었고, 제25대 철종과 그의 부인 철인왕후의 능인 예릉이 들어오면서 서삼릉이 되었다. 서삼릉의 경내에는 소경원(제16대 인조의 맏아들 소현세자의 원), 의령원(제21대 영조의 아들 장조(사도세자)의 제1자 ...
고령가야 태조왕릉
-사라진 역사, 고령가야의 흔적은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 위에 묻혀 있었다! ◈ 고령가야 왕릉 우리 역사에서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에 비해 가야는 많이 잊혀진 국가이다. 그러나 가야는 한반도 남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1세기부터 6세기경까지 존재했던 고대 국가다. 고구려나 백제, 신라와 같이 강력한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국가는 아니지만 각 지역의 소국들로 이뤄진 연맹체로 엄연히 우리의 역사다. 가야는 낙동강 하류에서 상류까지 넓게 포진해 있었다. 낙동강 하류에는 김해의 금관가야...
종묘宗廟 2
세계문화유산, 종묘 2 세계문화유산, 종묘 1 ▣ 정전正殿(국보 제227호) 종묘는 조선 역대 국왕과 그 비妃의 신위를 모신 곳이며, 정전과 영녕전 2곳이 있다. 정전은 종묘의 중심 건물로 영녕전과 구분하여 태묘太廟라 부르기도 한다. 종묘에는 모두 왕과 왕비 49분, 조천되신 왕과 왕비 34분이 각각 정전과 영녕전에 19실과 16실에 나누어 모시고 있다. 태조 이성계는 1392년에 조선왕조를 일으켜 세웠다. 1394년(태조 3) 8월, 한성을 조선왕조의 도읍지로 정하고, 이 해 10월 28일 고려의 옛 도읍지 개경에...
종묘宗廟 1
세계문화유산, 종묘宗廟(사적 제125호) 1 - 조선의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다. ◈ 종묘宗廟와 종묘제례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재사 지내는 왕실의 사당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다. 종묘는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공간과 제례를 준비하는 공간으로 이루어진다. 조선은 건국 직후 궁궐을 신축함과 동시에 궁궐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조상신에게 나라의 안녕을 비는 사당인 종묘를 세우고 서쪽에는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사직단을 마련했다....
동구릉東九陵(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東九陵 2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 1 ◈ 휘릉徽陵 조선 제16대 인조仁祖(재위 1623∼1649)의 계비 장렬왕후莊烈王后 조씨(1624~1688)의 무덤이다. 장렬왕후는 1688년(숙종 14) 8월 26일 창경궁 내반원에서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동년 12월 16일 이곳에 안장되었다. 장렬왕후는 1624년(인조 2) 한원부원군 조창원의 딸로 태어났다. 인조의 원비인 인렬왕후가 승하하자 1638년(인조 16년) 15세의 나이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인조 나이 44세였다. 장렬왕후는 궁에 들어온 ...
동구릉東九陵(조선왕릉)[세계문화유산]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동구릉東九陵 1 조선시대 때, 한성을 중심으로 파주(목)은 서쪽에 있고, 양주(목)은 동쪽에 있었다. 양주(목)은 현재 양주, 남양주, 구리 등으로 분리되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붕어하자 동쪽 지역인 현재의 구리에 능을 조성한 이후, 조선은 왕과 왕비의 가족 능을 축조하기 시작했다. 현재 동구릉이라 부르는 가족 능은 '도성의 동쪽에 있는 9개의 능'이란 의미다. 이곳에 능이 생길 때마다 동오릉ㆍ동칠릉이라 불러 오다가 1855년(철종 6)에 수릉이 옮겨진 이후 동구릉으로 굳어졌다. ...
신숭겸 장군 묘역
고려 개국 공신, 장절공 신중겸 -고려 태조 왕건은 신숭겸으로 인해 고려를 열었다! -공산 전투의 혈로를 뚫고 왕건을 구하다! 신숭겸이 없었다면, 고려는 삼일천하였다! 927년 9월, 신라 마지막 왕인 경애왕의 구원 요청을 받은 태조 왕건은 개성에서 남하하여 경북 문경시에 소재한 고모산성에 이르러 진격을 멈추어야 했다. 폭우가 쏟아져 계곡물이 불어나 진군할 수가 없었다. 백척간두에 선 신라와 경애왕을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어야 했다. 이 해는 왕건이 개성에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를 이어 왕이 된지 10년 째...
직산현 관아
직산현 관아 - 조·일 전쟁 당시, 직산전투(1597년)는 직산현 관아의 남쪽 금북정맥 아래인가? 북쪽 홍경원 평원(사평)인가? 직산현 관아가 있는 곳은 경기도와 충청도(호서)를 잇는 교통의 요로에 해당된다. 백제 초기 이곳은 마한의 소국 중 목지국의 영역이었다. 온조왕이 백제 초기에 도성을 이곳에 두었다는 설이 있는 곳이다. 관아는 남쪽에서부터 북쪽으로 외삼문(아문)·내삼문·내동헌·외동헌 4동의 건물이 있으며, 전체적인 배치는 남쪽에서 약간 동쪽을 향해 기울어진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1597...
음속보다 90만배 빠른 초속 30만㎞ ...
430km/h 고속헬기 X3 유로콥터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