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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2009-Apr

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

작성자: [레벨:16]한국의 산하 IP ADRESS: *.208.195.249 조회 수: 7016

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

-인화란 병사를 훈련시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병사를 훈련시키지 않고 전투를 하는 것은 그 병사의 목숨을 적에게 내어주는 것이다(금산 전투를 지원해 달라는 조헌 선생의 요청에 대한 답서 중에서)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592~1598) 동안 권율 선생은 지방행정관(광주목사, 현 시장에 해당), 도행정관(전라감사, 현 도지사 혹은 광역시장에 해당), 총사령관(도원수, 현 육해공군 총사령관에 해당)을 역임했다. 조선시대는 문무 겸직이 허용된 사회였기 때문에 '장군'이라는 호칭을 붙여도 상관이 없다. 권율 장군은 광주목사로서 금산 대둔산 자락의 이치에서 일본군을 크게 격파하였다(이치 전투). 그리고 전라감사로서 북상하여 수원 독산성(현재의 오산 독산성)에 주둔하였다. 독산성에는 물이 풍부하지 않다. 이를 알아차린 일본군이 고립화 작전을 펴자 권율은 흰쌀로 말을 목욕시키는 기만술을 폈다. 멀리서 보면 물방울로 보이기 때문에 일본군은 고립화 작전이 먹혀들지 않을 것이라 보고 퇴각하였다(세마대洗馬臺). 한양과 한양이북에 주둔한 일본군이 더 이상 북진과 남진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전략적 요충지 역할을 했던 곳이다. 북진하던 일본군이 명군 참전으로 인해 평양성이함락되자 군대를 한양으로 후퇴시킨다. 권율은 독산성에서 군사를 이동시켜 고양 행주산성으로 진군했다. 독산성에서 함께 주둔했던 선거이 장군을 서울 금천 호암산성(관악산 서쪽 끝자락)에 주둔시켜 지원하게 하고, 본인이 직접 군사를 이끌고 행주산성으로 향했다. 얼마 후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는 행주산성 전투가 벌어지게 된다(행주대첩). 행주대첩이 끝난 이후 일본군은 부산으로 퇴각할 수 밖에 없었다. 퇴각 요인이 여러 가지이겠지만 행주성 전투가 결정적 도화선이 되었다 할 수 있다. 이 전투 후 권율은 총사령관을 맡게 된다. 7년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599년 전쟁터의 피로감과 정치 역경 속에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으로 낙향하여 그곳에서 62세의 일기를 끝으로 사망했다. 아버지 권철(영의정 역임)이 뭍혀 있는 자리에 함께 뭍혔다.

  권율 장군의 행적을 따라 오산 독산성, 금천 호암산성, 고양 행주산성, 그리고 양주 권율장군묘 등 여러 곳을 다녔다. 7년 전쟁의 전투도를 그리기 위해서였다. 금산 대둔산 자락 이치를 가보는 날을 고대해 본다.

▼ 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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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역이 상단, 중간, 하단으로 되어 있다. 묘역 상단에 공의 아버지인 영의정 강정공 권철과 정경부인 조씨의 묘가 있고, 중간에 공의 동생 의금부사 권순(權恂, 1536~1606), 정부인貞夫人 파평윤씨의 합장묘가 있으며, 하단 중앙에 권율 장군, 좌측에 정경부인 창녕조씨, 우측에 후부인 죽산박씨의 묘가 있다.

  조선시대 사대부 집안의 일반적인 묘역구조는 봉분封墳 앞에 묘비墓碑·혼유석魂遊石·상석床石·향로석香爐石이 있고, 상석앞에는 장명등長明燈이 있으며, 그 양쪽으로 망주석望柱石, 문인석文人石 각각 1쌍씩 세웠다. 신도비는 종2품 이상의 공신이나 훌륭한 학자에게 허용되었던 것으로 묘의 남쪽 가까이 세웠다. 권율장군의 묘소에는 묘비·상석·향로석이 각1기씩 있으며, 이것은 사대부 집안의 묘역구조 원칙에 비교적 충실히 하였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무덤이 있음을 알리는 표시인 망주석과 무덤을 수호하기 위해 세우는 동자석·문인석이 각 1쌍씩 세웠다. 묘역의 입구에 있는 신도비는 기존의 신도비가 비문이 닳아 없어져 1861년(철종 12)에 권율의 후손들이 새로 건립한 것이다. 1971년과 1999년 정화사업으로 묘를 새롭게 단장했다.

▼ 위치

  권율장군묘는 경기 양주시 장흥면 장흥유원지 내에 있다. 서울 중심지에서 북쪽으로 북한산 국립공원이 있는데, 그 너머에 장흥유원지가 있다. 서울에서 장흥유원지를 가는 방법은 2가지이다. 서울 서쪽 지역인 은평구 구파발역에서 371번 도로를 타고 가면 되고, 서울 북쪽 지역인 도봉구를 지나 의정부로 가서 39번 도로를 타면 된다.

① 장흥유원지에서 바라본 양주 송암천문대

  계명산 형제봉(430m)에 세워진 사설 천문대이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희망과 꿈을 키워 우주시대의 개척자로 자라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어른들에게는 추억을 되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한일철강 회장을 역임한 송암 엄춘보가 2007년 7월 19일에 설립하였다. 이 천문대에는 주 관측실인 '뉴턴관'과 보조 관측실인 '갈릴레이관'이 있으며, 기타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 관측실인 뉴턴관에는 한국천문연구원이 국내 최초로 국산화에 성공한 600mm 리치-크레티양식 반사망원경을 설치하였다.

  사진 우측에 부드러운 능선이 보이는데, 이곳이 권율장군묘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371번 도로를 따라 200m 정도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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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도로 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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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변 경관

① 계명산(고령산) 형제봉 자락에 위치한 권율장군묘에서 남동쪽 서울 방향으로 바라본 전경

  권율 장군 묘 바로 밑에는 371번 도로가 지나간다. 왼쪽으로는 의정부, 양주 방향이며, 오른쪽으로는 서울 은평구 방향이다. 어디로 가든 39번 도로와 만난다. 이 산 너머에는 39번 도로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지나가고, 북한산 국립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좌측에는 사패산이 우측에는 도봉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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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양주, 의정부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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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서울 은평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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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율장군묘역

  371번 도로에서 권율장군묘역으로 바라본 전경이다. 신도비각과 신도비가 보이고, 앞쪽에 안내문과 새롭게 만든 신도비가 서 있다. 사진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왼쪽에 재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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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신도비각과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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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재실齋室(묘제墓祭를 지내기 위해 지은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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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율장군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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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권율장군묘

  권율 장군의 좌측에 정경부인 창녕조씨, 우측에 후부인 죽산박씨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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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권철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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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권순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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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kwonsa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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