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산성 5
강화산성 4
강화산성 3
전라도 지역의 전황과 유팽로 장군(1592. 4. 13~4. 28)
전라도 지역의 전황과 유팽로 장군 -월파 유팽로는 홍문관 박사(弘文館博士, 정7품, 7급 공무원)였다. -역사는 그를 임진왜란 최초의 의병장으로 기억했으며, 고경명, 김천일과 더불어 호남의 삼창의三倡義가 되었다. 유팽로 장군 정렬각, 출처: 임형의 남도문학기행 ◈ 전라도 지역 전황 전라도는 약 57개 행정구역이 있었다. 지도상에는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익산 위의 전라도 행정구역은 여산군, 진산군, 금산군, 용담현, 무주현, 임피현, 용안현, 함열현, 고산현이 있다. 1592년 4월 13...
이일의 상주 북천 전투
순변사 이일의 상주 북천 전투 -유리한 지형을 확보하였지만 병력집중과 비정예병이 문제였다. -보병 전술(집총 사격)로 승기를 잡고, 기병 전술로 완승하다. 다음 카페 상주초등학교24회 ◈ 상주읍성과 주변지형 상주는 조선 건국(1392년) 이후 임진왜란 발발(1592) 때까지 201년간 경상도 감영이 있던 곳이다. 상주읍성은 북쪽으로 노음(악)산과 천봉산, 남쪽으로 갑장산을 품고 있으며, 상주 3악이라 한다. 천봉산 남쪽 자락에는 자산이 있으며, 자산의 능선을 따라 자산...
경주성 함락과 곽재우의 전략적 방어
곽재우의 경상우도 방어와 경주성 함락 -진격로 예상 지점에 정찰대와 매복부대를 운영하다! -사술과 궤모는 명장도 사양하지 않는다. -병사가 없는 지휘관과 백성들이 없는 수령만 탓할 것인가! 병사들과 백성들은 어디로 갔는가! 곽재우 의병장의 유품 보물 제671호, 장검 보물 제671-1호, 말안장 ◈ 일본의 조선 침략 제1군(번대) 소서행장은 3월 13일 대마도 대포항에 있었다. 4월 13일 대마도 도주인 종의지의 병력과 합세한 후 함선 700여척에 분승하고 오전 8시에 대포항...
임진왜란의 첫 번째 의병전투, 김해성 전투
임진왜란 첫 의병 전투, 김해성 전투 -직접공격에서 간접공격으로 전환하라! 식수 공급을 차단하여 지구작전持久作戰으로 변경하라! -힘은 다하고 지원병이 없으니 어찌할 수가 없구나(力盡孤城無奈何역진고성무내하) 송담서원 내의 사충단 표충사, 출처: 다음카페 50대 이상의 멋과 여유로움 ■ 김해부와 김해성 주변 지역 ▼ 고지도(해동지도)와 위성사진으로 본 김해부 지역 김해읍성 좌측에 덕교德橋)가 있다. 일본측 자료에 의하면 덕교왜성을 축성한 자리로 비정하고 있다. 이...
박진의 작원관 전투
작원관 전투 -한사람이 문을 지키면, 만 명 병사도 지나갈 수 없다(일부당관만부막개一夫當關萬夫莫開, 이백李白의 시詩, 촉도난蜀道難) -겉으로 험한 벼랑길을 수리하는 체 하면서 몰래 건너가 진창을 공격한다(명수잔도 암도진창明修棧道 暗渡陳倉, 사기, 고조본기) 천태산 시루봉 남쪽 능선에서 바라본 삼랑진읍 검세리 전경(출처:다음 카페 산에서 만난 사람들) ■ 일본군 편제 국가나 기업, 단체에는 장이 있고,그 밑에는 직위에 따른 업무 영역이 있다. 정부의 경우 지방자치단체는 ...
정문부의 장평 전투
정문부의 장평 전투 -서전緖戰을 완전한 승리로 장식하라! -전쟁은 정正으로 병력을 움직이고 기奇로 운용함으써 승리한다! (범전자凡戰者 이정합以正合 이기승以奇勝-손자병법孫子兵병세편法兵勢篇) ■ 정문부 선생의 행적과 일본군 제2군의 진격로 ▼ 정문부 선생의 행적 정문부가 북평사로 임명된 것은 1591년 7월 30일이었다. 2일 후인 8월 2일 한성 동대문을 출발하여 포천, 철원, 김화를 지나 한달 뒤인 9월 2일 강원도 회양에 도착한다. 9월 중에 임지인 행영에 도착하여 북도 ...
임진왜란이 남긴 여주의 비운, 신륵사
임진왜란이 남긴 여주의 비운, 신륵사 -신륵사에서 떨어지는 꽃잎은 친구의 영혼이런가!(고려의 고승 나옹 화상의 출가는 친구의 죽음으로 비롯되었다) -일본군의 진격을 저지한 원호 장군의 복병지, 조포나루와 봉미산 신륵사 ■ 역사의 지평선 여주를 가면 늘 가는 곳이 있다. 그곳에 가면 무언지 모를 애석함이 묻어난다. 그곳에는 군대 시절 아련함도 깃들여 있다. 역사의 흔적과 내 생애의 한 순간이 머물고 있는 그곳! 도도한 역사의 흐름을 막지 못해 화마가 닥쳐오고, 그 화마속에 온통 재가 되어 흩어져 버린 그...
임진왜란이 남긴 또 하나의 상처, 여주 고달사지
임진왜란이 남긴 또 하나의 상처, 여주 고달사지 -고려 초기에는 국가에서 관장하는 3대 선원의 하나였다! -폐사지에 남아 있는 역사의 주춧돌은 내일을 살아가는 미래의 거울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7년 전쟁, 1592~1598)은 조선시대 500년 동안 전대미문의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수 많은 인명이 사살되고 경제력이 고갈되었다. 이 뿐만 아니라 조선사회가 면면히 전통을 지켜왔던 과거 조상들의 정신적 유산물 역시 깡그리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 무엇으로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격전지, 성산성을 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격전지, 성산성을 가다! -정발 장군과 송상현 부사 vs 유림 장군과 홍명구 감사 -조선시대에 무신은 문신의 악세서리에 불과했다! 필자는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역사적 사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병자호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이해의 폭이 넓지 않다. 성산성과 김화읍성, 그리고 김화 지역에 대해 갖는 인상은 임진왜란 발발 초기에 여주 신륵사에서 일본군의 북진을 저지시킨 원호 장군에 대한 것이다. 징비록에는 '춘천'에서 전사했다고 되어 있지만, 선조수정실록과 효...
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
권율장군묘權慄將軍墓 -인화란 병사를 훈련시켜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병사를 훈련시키지 않고 전투를 하는 것은 그 병사의 목숨을 적에게 내어주는 것이다(금산 전투를 지원해 달라는 조헌 선생의 요청에 대한 답서 중에서)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 1592~1598) 동안 권율 선생은 지방행정관(광주목사, 현 시장에 해당), 도행정관(전라감사, 현 도지사 혹은 광역시장에 해당), 총사령관(도원수, 현 육해공군 총사령관에 해당)을 역임했다. 조선시대는 문무 겸직이 허용된 사회였기 때문에 '장군'이라는 호...
고경명, 조헌, 칠백의총과 금산성 전투의 격전지를 가다!
금산성 전투의 격전지 -전역적 차원에서 1차, 2차 금산성 전투는 불가피한 전투였는가? -임진왜란 초기에는 용장이 더 필요했는가? 지장이 더 필요했는가? ■ 칠백의총 종용사 ■ 금산군 주변 지역과 임진왜란(7년 전쟁) 1592년 6월, 7월, 8월에 벌어진 금산성 전투도를 그리기 위해서 먼저 금산지역을 이해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읍성(동래성, 진주성, 경주성, 영천성, 상주성 등)과 달리 금산읍성은 그 규모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이나 그 당시의 흔적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또한 그 지역의 지명이 문제였...
북관대첩비와 정문부 선생의 충덕사
정문부 선생의 충덕사를 찾아서 -300인의 전사戰士 -정문부 선생을 생각하면 조선의 역사가 통탄스럽다! ■ 함경북도의 행정 및 군사 지도 ■ 정문부 선생을 기리며... 정문부 선생은 임진왜란(7년 전쟁)이 발발하기 8개월 전인 1591년 7월 29일에 함경북도 병마사(육군 사령관) 휘하의 직책인 평사(정 6품, 현재의 선생겸 장학사에 해당)에 임명되었다. 7년 전쟁이 발발할 당시 행영에 있다가 5월 1일 부산 함락 소식을 접했다(한격의 편지). 이 편지에 '4월 15일 왜적이 동래를 함락시키자 부사 송상현이 ...
고립화 전략에 궤멸된 송상현 부사의 동래성 전투
동래성 전투 -병참기지를 사수하라! -고립화 전략과 호접진蝴蝶陣(부채를 활용한 지휘법) 전술에 말려든 조선군 ■ 동래읍성 ① 동래부 동헌(동래시장 내에 위치) 동래부 동헌은 1636년(인조 14년) 동래부사 정양필이 창건하고 1711년(숙종37) 동래부사 이정신이 충신당忠信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일제시대에는 동래군청 청사로, 1973년 동래군이 양산군으로 편입되면서 양산군 보건소 동부지소로 활용되었다. ② 충신당忠信堂 관아 건물이 다른 고을에 비해 규모가 컸었다고 하나 일제시대 때 대부분의 건물이 철...
600인의 전사! 정발 장군의 부산진성 전투
부산진성 전투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하나이다! ■ 우토루宇土樓와 부산포 ▼ 우토성 1592년 1월 5일 조선 출병의 명령이 하달되었을 때, 우토성의 영주인 소서행장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오사카 근처의 사카이 상인의 아들이자 천주교도인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모략과 고도의 전략적 사고로 일본 내의 영주들을 압박하고 있었다. 천주교도들이 많이 거주하는 규슈 지역은 공포 그 자체였다. 히데요시는 천주교도들에게 채칙과 당근을 함께 사용하였는데, 채찍은 바...
2
COMMENTED
일본군의 조선 침공, 7년 전쟁의 서막!
7년 전쟁의 막이 오르다! 조선군의 초기 대응 -주변국의 정세에 눈이 어두운 조선 정부- -해군력을 증강시키지 못한 조선 정부의 혹독한 시련이 시작되다- ■ 부산 전경 2008년 국제 관함식 때 서울에서 C-130 수송기를 타고 김해로 갔다. 부산을 지날 때 수송기에서 찍은 사진이다. ▼ 화준구미, 다대포, 서평포, 절영도 전경 ① 몰운대 전경 다대포 해수욕장에서 남쪽으로 길게 뻗어 내려간 줄기가 몰운대이다. 몰운대에서 약간 떨어진 남쪽 지점에 섬이 하나 있다. ② 다대동 아미산과 응봉 봉수대 다대포에...
음속보다 90만배 빠른 초속 30만㎞ ...
430km/h 고속헬기 X3 유로콥터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