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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Nov
왜성이 눈 앞에 보이는 순천 "검단산성"의 위기
작성자:
조현상
조회 수: 1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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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대숲에 밀려났다. 천년 세월을 안고 온 검단산성의 위기 순천만과 갈대숲 낙안읍성과 더불어 지켜야할 검단산성
검단산성(劍丹山城)은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산성으로, 사적 제41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남해를 향해 왜성을 노려 보고 있다. 지난 임진란의 역사를 말없이 간직하고 있는 성이기도 하지만 뼈 아픈 역사의 현장을 순천 왜성을 내려다 보며 통곡했던 검단산성이다.
▲ 검단산성에 도착하자 보이는 남문과 성벽이 잡초에 뒤 덮혀있다.
검단산성이 내려다 보고 있는 왜성(외교성으로 불리기도 했다.)은 정유재란(1597) 당시 육전에서 퇴진한 왜군 선봉장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도다카도라[堂高虎]가 전라도를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순천 지역 민 들을 강제 동원해서 쌓은 토·석성이며, 침략 최 정예 부대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 4000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조선과 명나라 수륙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최후·최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때 왜병을 맞서 노려보며 지켜보았고, 치열했던 전장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검단산성이다.
검단산은 안산으로도 불리며 지도상에는 피봉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해발 138.4m의 낮은 산으로 여수반도와 순천 지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고 순천 왜성과는 직선 2.5k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왜성을 공략하기 위해 쌓은 성이라고도 하지만, 검단산성은 6~7세기에 걸쳐 축성된 백제시대 성으로 그 당시의 유물(토기, 기와)연지·저장고·건물지·문지·수문 등이 발견되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조선군과 명군의 연합군이 순천 왜성에 주둔한 왜군과 대치하면서, 왜성의 동태를 살피기도 했다.
산성의 형식은 산봉우리에다 마치 테를 두른 것처럼 보이는 테뫼 식이다. 성벽 축조방법은 협축식으로 성의 총길이는 430m, 내벽 높이는 1~3m, 외벽 높이는 4~6m, 두께는 5m 정도되는 산성이었지만, 지금은 성벽은 토성처럼 흙으로 덮여 있고. 내성 역시 2~3미터로 추정되어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내성벽은 흔적을 찾기가 힘들다.
근세에 왜군(일본)에게 2번씩 43년의 긴세월을 농락당한 우리민족의 한과 충렬이 베어 있는 이곳 검단산성에서 왜성을 바라보면 멀리서도 확역이 보이는 천수각과 왜성의 복원은 놀라울 정도로 잘복원되어 있다. 아직 왜교성의 형태의 복원은 하지 못했지만, 주차장과 성곽의 모양은 그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복원되어 관광객을 맞이 하고 있다. 반면 순천의 오랜 역사을 고이 간직하고 있는 검단산성은 입구에서부터 쉽게 찾기 힘들 정도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산길을 따라 오르면 곳곳이 패인 흔적과 정리되지 않는 성으로 가는 길이 왜성과 비교하기 싫을 정도로 초라하다. 마침내 성의 남문에 도착하면 풀이 숲을 이루고 있어 이곳이 성의 왜벽 인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더구나 남문으로 오르는 길은 아에 잡초에 덮여, 그 흔적만 초라하게 남아 있을 정도다.
성의 안내를 적은 간판은 지난 여름 폭풍우에 나가 떨어져 그역할을 상실하고 있다. 성의 정상에 오르면 소나무 몇 그루가 말없이 반기고 있고 성의 흔적만 보일뿐 손길을 맞이 한지 오래되어 잡초만 무성하게 우거져 있다. 북쪽에 나 있는 북문 자리는 이곳이 북문인지 흔적을 찾을 수 없을 정도이고, 간판만이 잡초에 묻혀 수고한 발길들에게 만 이곳이 북문이었다고 알려주고 있다.
순천은 2013년 국제정원박람회를 유치할려고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정원박람회의 유치는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는 척도이자 발판이다. 박람회가 유치되어 외국 손님을 맞이할 때 아마도 일본인들이 많이 찾아 올 것임에는 틀림없다. 일본인들은 자기들의 흔적을 꼭 찾아 본다. 옛 위상을 되세기고 속으로 흐뭇해 하는 습성이 있다. 박람회가 열리고 우리국민들은 축제에 빠져 있을 때 일본인들은 왜성과 검단산성을 관리 상태를 비교해 보고 자기들의 역사적 유산이 한국에서 잘 대접받고 있다고 얼마나 속으로 좋아하고 흐뭇해 할지를 생각하면 생각하기도 싫다.
치욕의 역사도 보존해야 하지만 우리의 검단산성도 유구한 세월동안 순천지역과 이나라 금수강산을 바라는 것없이 지켜왔다.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검단산성! 왜성 이상으로 보존과 역사적 가치가 있는 성 이기에는 틀림없다. 국제적 도약을 꿈꾸고 있는 순천은 우리의 역사도 잘 가꾸어 세계인에게 내보일 때 비로소 선진 순천으로 거듭 날것이다.
▲ 검단산성으로 안내하는 입간판
▲ 검단산성으로 가는 입구의 모습
▲ 산성으로 가는 비교적 안정되어 있는 길
▲ 검단산성에 도착하자 보이는 남문과 성벽이 잡초에 뒤 덮혀있다.
▲ 성으로 오른길 원래는 없어야 하는 길 예전에 복원공사 하면서 공사 차량이 드나들던 길인 듯, 우리 유산과 유적의 복원과 관리 상태를 대변해준다.
▲ 여기기 검단산성입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 폭풍우에 쓰러져 풀속에 쓰러져 있는 안내판
▲ 성벽 안쪽에서 본 남문지(남문) 성 안쪽으로 올라오는 통로인데 바로 옆에 인위적으로 훼손되어 길이 나 있다.
▲ 남문지에서 바라본 팔각 집수정
▲ 성 안쪽을 둘러 볼 수 있는 안내길이자 북문으로 통나무 안내 길 관리가 되질 않아 잡초에 묻혀 있다.
▲ "성 내벽" 내벽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동쪽 성벽
▲ "저장 구덩이" 발굴은 되어 있지만 관리가 되질 않아 찾아보기 힘들다.
▲ 다각형 건물터
▲ 성 맨 위 한가운데 작은 소나무 몇 그루가 서로를 의지하고 있다.
▲ 나그네의 발길을 멈추고 쉬어가는 의자 누군가의 손길이 필요하다.
▲ 성벽을 안내하는 안내판이 세월의 흔적인지?
▲ 여기가 북문이다! 무성한 풀숲에 안내판이 사람의 발길을 거부한다.
▲ 검단산성에서 바라본 왜성 멀리서 보아도 천수각과 성벽이 잘 정리 복원되어 있다.
▲ 남문지 옆에 선 소나무 홀로 서 있기도 벅찬데 덩굴마저 괴롭히고
▲ 북쪽 성벽 바로 옆에 아름다운 소나무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잘 가꾸고 관리하면 시민들의 산 교육의 장이자 시민의 휴식 공간이 될 수 있고 성 안쪽에서 사방을 둘러보면 삶에 찌든 나그네의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풍광도 아름다운 검단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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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시엔뉴스 조현상 jyohe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