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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

15

2009-Apr

순천 왜교성(倭橋城)

작성자: [레벨:16]한국의 산하 조회 수: 13969

7년 전쟁의 마지막 격전지, 순천 왜교성에 가다!

-아我와 피彼의 상황을 철저히 활용하여 살아 돌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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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왜기공도권」에 나오는 왜교를 후대에 모사한 왜교성 모습

「정왜기공도권」에 나오는 왜교를 후대에 누군가가 모사한 왜교성 모습을 순천시가 왜교성 수리 당시 안내문에 작도해 놓은 왜교성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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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교성 위치도

▼ 주변 지형도

왜교성 좌측에는 검단산성이 위치하고 있는데, 이 성은 백제시대의 산성이다. 정유재란(1597년) 당시, 이곳에는 서로군의 총지휘관인 유정, 그리고 조선의 지휘관인 도원수 권율 장군이 전투 지휘를 총괄하던 본부로 사용되었다.

왜교성 우측에는 장도가 있다. 정유재란 당시 왜교와 장도 사이에는 바다였고, 바닷물이 빠지면 완전히 뻘이 된다. 날이 맑으면 멀리 묘도가 보인다. 묘도는 왜교성 전투 당시 해군 총사령관 진린과 조선 해군의 사령관 이순신이 묘박하던 장소이다.

기존 연구는 왜교성 전투와 노량해전을 개별적으로 취급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 두 전투를 하나의 전투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왜교성 전투의 일환이 노량해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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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교성 밖에서 왜교성을 바라본 전경

검단산성에서 왜교까지는 2.5km 정도이다. 왜교에서 장도까지 2km, 왜교에서 송도까지 4km, 왜교에서 묘도까지 10km이다. 지점 1, 지점 2, 지점 3에서 왜교를 바라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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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지점 1에서 바라본 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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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지점 2에서 바라본 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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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지점 3에서 바라본 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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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에 1첩, 2첩, 3첩 중의 천수각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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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교성 안(천수각 위)에서 밖을 바라본 전경

남동 방향에서 시작하여 시계 반대 방향으로 360도 전경을 보여주고 있다.

① 남동 방향

앞에 장도가 보인다. 정유재란 당시에는 왜교와 장도 사이가 바다였고, 바닷물이 빠질 경우에는 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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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동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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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동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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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북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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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북서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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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서쪽 방향

검단산성이 보인다. 아래 사진 속의 천수각에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가장 햐얀 돌의 우측 모서리에서 직선 방향에 있는 산이 검단산이다. 지척 사이에서 조명 연합군의 총사령관 유정과 일본군 사령관 소서행장이 대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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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남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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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교倭橋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1597년 9월 1일에 소서행장이 일본군이 주둔하기 위해 성을 처음 쌓기 시작했는데, 이곳의 명칭을 '왜교(倭橋)'라 하였다. 난중잡록에는 '행장 등의 적이 구례를 거쳐 순천으로 향하여 왜교에 결진하여 성을 쌓고 막사를 지었다(행장등적유구례향순천결진우왜교축성조막行長等敵由求禮向順天結陳于倭橋築城造幕)'라고 되어 있다.

1598년 9월 4일 기록에는 '행장의 왜교 진성(行長倭橋鎭城)은 이미 높고 견고하며 해자는 또 깊고 험한데다 밖에 채책(外寨柵)을 설치하였다'고 하여 본성과 지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채책은 본성보다 규모가 작은 성을 의미하며, 돌과 나무, 흙을 이용하여 울타리를 만들고 목책을 두르며 좁은 길을 낸 것이다.

12월 초에 고니시 유키나가가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 앞으로 축성 완료 서장을 보낸 것으로 보아 11월 말에 왜교성을 완성한 것 같다.

순천 왜교성은 1597년 9월 1일부터 11월 말까지 약 3개월간에 걸쳐 쌓은 것이며, 축성을 담당한 장수는 고니시 유키나가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으로 알려져 있다. 1922년 일본군 참모본부가 편찬한 「일본전사조선역(日本戰史朝鮮役)」(405쪽, 순천성전투 내용)에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와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가 순천 왜성을 축성한 것으로 기술되어 있고, 일반인들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는 이형석의 「임진전란사」에서도 이를 인용하여 위의 두 장수가 순천성을 축성했다고 기술하였는데, 이는 잘못 알려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본 글에서는 왜교를 본성과 지성으로 나누고, 본성 내에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한다. 외성은 1첩과 2첩이, 내성은 3첩이 이에 해당된다.

▼ 1첩(외성) 전경

먼 전경에서 가까운 전경으로의 1첩의 모습과 다양한 각도에서의 1첩의 모습이다.

① 해자가 보이는 1첩의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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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해자가 보이는 1첩의 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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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외부에서 내부로 찍은 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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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내부에서 외부(충무사 방향)로 찍은 왜교(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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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내부에서 외부(신성리)로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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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1첩에서 내부(2첩과 천수각)로 찍은 사진(바로 앞 2첩이 보이고, 멀리 천수각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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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2첩 지점에서 1첩과 지성을 향하여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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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첩(외성) 전경

① 1첩에서 2첩으로 찍은 모습

사적지를 찾을 때마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전신주와 전선이 경관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 유적지에는 전선을 지하로 연결해 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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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2첩 위(밭)에서 1첩과 지성 방향으로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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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첩(내성) 전경

① 밖에서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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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안에서 밖으로(3첩 구조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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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첩 중의 3첩(내성) 전체 전경

북쪽 방향에서 남쪽 방향으로 길게 구축되어 있다. 4장의 사진을 연결한 것이 내성의 전체 전경이다. 2번째 사진의 앞쪽 성곽과 뒤쪽 성곽 사이에 문이 있고, 네 번째 사진의 우측 가장자리에 문이 하나 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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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 2첩 중앙 문 전경

① 밖에서 안으로(남쪽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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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위의 사진 속 문 앞에서 북쪽 방향으로 찍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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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안에서 밖으로(북서 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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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성 2첩 가장자리 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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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기단(天守基壇)

천수건물이 세워졌던 단으로 천수기단 앞에는 부속된 낮은 단이 있다. 천수는 성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정왜기공도」에 5층 망해루(望海樓)라고 쓰여 있는 3층 팔작지붕의 천수건물(외관보다 내부 층수가 대부분 많음)이 그려져 있다. 기단 석축이 오랜 세월 동안 흐트러지고 일부가 무너져 2007년 보수하였다.  

석축 쌓기 방식은 자연석 허튼층쌓기 방법이다. 모서리 돌을 쐐기질하여 쪼갠 돌을 사용하였고 쐐기질 흔적이 잘 남아 있으며 위아래 교차되게 쌓았다. 기단 상부에 남아있던 초석은 그대로 보존하고 기존 초석 위에 새로운 초석을 설치하여 알 수 있도록 하였다.

① 정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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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측면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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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卷)

「정왜기공도권」은 순천 왜교 전투, 노량 해전, 남해도 소탕작전 등으로 구성된 6.5m의 두루마리 그림이다.  이 그림은 명나라 황실의 종군 화가가 그린 것으로 판단되었으며, 이 그림 속의 11장의 사진 자료는 콜럼비아 대학의 게리레드야드 교수가 최초로 공개했다.

7년 전쟁(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그린 전투도 중에는 「평양성 전투도」가 전해지고 있었지만, 전쟁이 끝난 200년 후의 작품으로 화가가 전투를 목격하고 그린 것은 아니고, 당시의 기록을 참고해 상상력을 덧붙여 그린 작품이다. 일본측에서 남긴 그림들도 대부분 그러했다.  

반면 「정왜기공도권」은 병사의 동작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묘사되어 종군 화가가 전쟁터에서 상황을 보면서 그린 일종의 종군화이므로 그 내용이 세밀하다. 「정왜기공도권」을 정확하게 복원시키는 것은 어렵지만, 이 두루마리는 400년전의 사건을 어떤 역사서적보다 자세하게 전하고 있다.

「정왜기공도권」에 나타난 왜교의 모습과 그 당시 전라도 의병장이며 남원, 구례 등지에서 의병장으로 활동하고 순천 왜교 전투 때에는 도원수 권율 막하에서 정예군 별장으로 참전했던 조경남이 남긴 「난중잡록」의 전투장면을 교차하여 분석하면 「정왜기공도권」에 보이는 왜교의 모습이 거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다. 조경남의 「난중잡록」에는 왜교 전투가 날짜 별로 기록되어 있다.

「정왜기공도권」에 왜교를 공격하는 장면이 있는데, 이를 보면 석축 위에는 곡륜(曲輪) 가장자리를 따라 목책이 둘러쳐져 있고, 성곽 밑에 뚫린 총안(銃眼)으로 공성군(攻城軍)을 사격하는 모습이 있으며, 그 너머에는 2중의 목책이 세워져 있다. 또한 성내에는 와즙(瓦葺)건물로 보이는 시창(矢倉)이 보이고, 그 외에 숙사(宿舍)가 그려져 있으며, 안쪽에는 군데 군데 방패구실을 하였을 것으로 보이는 판벽(板璧)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해전(海戰)을 그린 것에서는 바닷가에 목책이 세워져 있고 곳곳에 판벽을 가설하여 이곳에 몸을 은폐하고 공격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목책과 판벽을 세운 곳이 구(構)의 일부로 추정된다.

① 「정왜기공도권」에 보이는 왜교와 천수각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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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정왜기공도권」을 모사한 왜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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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교와 장도 사이의 지형 모습

이 사진은 순천만 낙조 사진이다. 왜교 전투 당시 명군과 조선군이 왜교성을 공격할 때 썰물이 들어 퇴각하지 못하고 뻘에 갇혀 버렸다. 명군의 전함은 조선 전함보다 선체가 낮아 방어하지 못하고 거의 전부 전사하거나 포로가 되었다. 조선군 전함은 선체가 높아 일본군의 공격을 막아내고 밀물이 들 때 온전히 퇴각하였다. 그 당시 왜교와 장도 사이의 지형이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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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kwonsa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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