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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6

04

2009-Mar

마산왜성

작성자: [레벨:30]천년약속 조회 수: 11846

▼ 마산의 중심에 있는 용마산부근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래사진을 보시면 왼쪽에 있는 학교가 합포초등학교입니다. 그 뒤에 있는 산이 용마산인데 마산왜성은 왼쪽 끝에 있는 흰색으로 된 탑이 보일것입니다. 그곳이 합포왜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지금은 충혼탑이 있습니다. 용마산은 해발 100m정도(그것보다 작을 수 있습니다.) 되는 높이가 작은 산입니다.



▼ 마산수출자유지역에서 바라본 용마산입니다. 높이가 짐작이 갈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조그마한 배들이 있을 것입니다.



▼ 그럼 일본 왜성이 있었다는 곳을 올라가보겠습니다. 저도 마산시 홈페이지에 마산왜성이 있었다고 하였지만 과연 마산왜성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올라 가보았습니다. 어디에도 마산왜성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시민들을 위한 체육시설은 있었지만 안보이더군요. 그런데 충혼탑쪽으로 걸어가니 어디서 많이 본 성벽모양이 보였습니다.  아래사진을 보시면 알겠지만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보는 축대모양입니다. 이것이 과연 마산왜성의 모습일까요? 오른쪽에 보시면 왜성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모습이 보일 것입니다.



▼ 이제부터 아래 사진을 보시면 왜성의 흔적을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어릴때 자주 와본 곳이지만 이곳이 마산왜성이 있었던 곳이라고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래 사진을 보시면 왼쪽에 쌓여있는 축대(?)가 마산왜성의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른쪽에 조성된 축대는 70년대 이후 조성된 것 같고 건물을 지탱하는 축대는 1990년대나 2000년대 이후 조성된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 아래 사진도 위 사진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러면 이사진을 보고 마산왜성 이라는 것을 짐작하는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요?



▼ 아래 사진은 일본 히메지성의 전통적인 석축(石蓄)방식을 보여주는 사진입니다. 아래 사진 4장은 자주국방네트워크의 고성혁님의 사진입니다.



▼ 자주국방네트워크의 고성혁님은 "모서리 부분과 여타부분의 차이점을 금방 알아볼 수 있는 일본의 석축방식이다. 빈공간이 없도록 잔 돌로 메우고 있다. 아마 성벽을 타고 오르기 어렵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 그럼 우리나라의 성을 축성하는 방식이 아닐까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전라병영성의 축성방식을 나타낸 사진이다.



▼ 일본의 오사카성이다.



이제 우리나라성과 일본성의 차이를 아셨는지 모르겠습니다.

▼ 아래 사진은 1970년대 이후 조성된 석축방식임을 알 수 있다. 뭘로(?) 경험으로 분으로 보았기 때문에..  



▼ 이제 위의 사진과 비교하니 왜성의 흔적이 느껴지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아니 그럼 마산왜성이 히메지성과 같은 방식이었다면 더 조밀하게 축성을 해야되지 않느냐는 질문이 있으리라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공간이 비워있는 것이 틀리지 않느냐는 이야기를 할 수 있겠죠. 그것은 임란때 일본내에서 조성된 것이 아니고 조선에서 조성되었고 많은 시간을 들여서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 성벽을 따라 올라가면 충혼탑이 보입니다. 이 자리가 마산왜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렇게 조성된 것은 70년대 조성되었다고 하더군요. 현장취재때 만난 70대로 보이시는 할아버지께서 증언을 해주었습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 않습니까?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분들을 기리고 호국영령들에게 조문을 구하는 곳이 일본 왜성자리에 세웠다는 것이.... 그것도 왜성의 가장 중심인 천수각자리에 있다니...



▼ 충혼탑 주의를 감사는 축성들입니다. 여기를 보면 확실히 히메지성과 같은 방식으로 조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게 조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아래 사진에 보이는 축성방식과는 확연히 차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산왜성은 참여인원은 20,000명정도 였다고 합니다. 총평수는 1,300평이고 돌의 크기는 2 X 2 X 2.5미터였다고 합니다. 왜성의 높이는 3~7미터 였습니다.



▼ 되돌아 오면서 충혼탑 주위 사진을 찍었습니다. 성벽과 건물의 조화가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보이는 건물이 있는 곳이 예전 마산왜성의 출입구가 있었던 곳입니다.



▼ 계속 이어진 왜성의 흔적은 아래사진과 같이 현대의 방식으로 축성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위의 사진과 아래사진을 비교해보시면 차이를 느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용마산에서 바라본 마산입니다.  보이는 곳은 산호동,양덕동방향인데 모두 1970년 이후 조성된 마산시의 모습입니다. 임진왜란때에는 이곳에는 논만 있을 것으로 짐작이 갑니다. 



▼ 용마산 아래에 있는 합포초등학교 입니다.



▼ 합포초등학교에서 바라본 용마산입니다. 산정상이 마산왜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 요즘 2000년 이후 자연과 하나되는 방식의 석축방식인거 같아서 찍어보았습니다.



마산왜성으로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용마산성(龍馬山城) 또는 창원성(昌原城)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임진왜란 당시 왜성을 쌓았던 장소가 창원부였기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 상륙한 왜군은 전투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부산과 경남 해안 일대에 축성을 시작하였습니다. 울산을 시작하여 부산, 김해, 가덕도, 진해, 마산, 고성, 거제, 남해, 사천, 순천을 연결하는 왜성을 쌓았습니다. 마산왜성은 그때에 축성된 것 중의 하나로, 왜장(倭將) 다테[伊達政宗]가 용마산에 쌓기 시작하였으며, 1597년 12월 정유재란 때 왜장 나베시마[鍋島直茂]와 그의 아들이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대부분 허물어지고 석축의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한때 사적으로 지정되었다가 왜성이라는 이유로 해제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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