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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Mar
보령 남포읍성(藍浦邑城)
작성자:
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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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유: 보령시 지 정 별: 지방기념물 제10호 지정년월일: 1973년 12월 24일 규 모: 길이 900m(86.528m2) 위 치: 충남 보령시 남포면 읍내리 378-1 시 대: 고려,조선시대 남포읍성(藍浦邑城)은 차령산맥(車嶺山脈) 끝자락 평지에 쌓은 성으로 고려시대에 서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막기위해 성을 쌓았고 우왕때 석성(石城)으로 축성하여 공양왕2년(1390년) 완성하고 군영(軍營)을 설치하였다. 조선태조6년(1398년)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두어 현사(縣事)를 겸하게 하였고,서해로 출몰하는 왜구를 물리치고 민심을 바로 잡았다. 길이 900m,높이3.5m의 수직 성벽에 미석(眉石)과 여장(女薔)을 두었고 사방에 치를 두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동.서.남3대 성문을 두고 옹성(甕城)형태로 만들어 외부에서 성문을 찾지 못하도록 하였다. 성내에는 우물이 3곳이 있었고 서쪽성벽에 수구(水口)가 남아 있으며 당시 건물로 동헌(東軒),옥산아문(玉山衙門),진서루(鎭西樓)가 보존되고 있다. 골목을 따라 들어가니 남포 관아문(藍浦 官衙門)이다. 조선시대 남포현의 관아 건물이다. 동헌,옥산아문,진서루 3동이 있으며,동헌(東軒)은 정면7칸,측면3칸의 원주(圓柱)기둥에 팔작지붕의 전통한식 건물이다. 옥산아문(玉山衙門)은 옥마산(玉馬山)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으며,동헌의 내삼뭄으로 정면7칸,측면1칸이고 솟을 형식을 갖추고 있다. 또한 좌.우측에 홍살과 익실을 두어 출입자의 동향을 살피던 건물이었다. 진서루는 동헌의 외삼문이었고 중충누각 형태이며 하층에는 대문을 두었고 위층은 사방에 난간을 두었고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며 화려한 단청으로 마감하여 조선시대 관아건물의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다.
선정비가 서 있다.
동헌의 모습이다. 정면 7칸, 측면 3칸 ,팔작지붕 형태의 집이다. 그 앞으로 역시 큰 나무가 이 곳 동헌을 호위하 듯 서 있다.
안쪽에서 본 진서루.
읍성내부 모습으로 잡초와 나무가 우거져 있다.
읍성위로 올라가 봤다. 여장은 복구가 안된 상태다. 재미있는 것은 원형 모양의 옹성과 각 모양의 치성이다.
잠시 입구쪽으로 걸어 나왔다. 서문터다. 여기서 북벽을 따라가 본다.
복원된 성벽이다. 아래부분의 돌들은 크기가 큰 돌로 그 위로 좀 작은 크기의 돌로 쌓아 올린 모습이다. 남포읍성에 대한 문화재 설명 안내판에 있듯이 ' 높이 3.5m의 수직성벽에 미석과 여장을 두었고 사방에 치를 두어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라는 표현이 북벽구간에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듯 하다. 맨 위 두번째 납작하게 약간 돌출되어 나오는 돌이 미석으로 빗물들이 성벽을 타고 흘러가 성벽이 상하지 않도록 해 놓은 성벽보호용 시설이다. 그 위로 여장시설은 복원되지 않았다.
옹성이다. 성곽과 원형부분 옹성이 잘 복원되어 있었다.
북쪽 성곽 모습이다. 서쪽 일부와, 북쪽과 동쪽은 복원이 잘 되어 있었다.
운지버섯. 식용은 아니고 약용이란다. 항암효과가 있다지?
북쪽 성곽끝이 치성이다. 서쪽과 북쪽 경계엔 옹성. 북쪽과 동쪽 경계엔 치성이다.
각이진 치성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동쪽 성곽 모습이다.
동쪽성곽이 끝나는 부분. 구조와 깊이를 쉽게 알 수가 있다.
성곽위로 올라 보았다.
치성에서 바라본 읍성 안에 남포관아 모습이다.
내탁축성법을 보여주는 읍성 안쪽 모습.
관아건물로 내려서며 남포읍성 답사를 마친다. 남쪽구간을 복구하면서 읍성내부도 깔끔히 정리한다면, 관광명소로 손색이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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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