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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Dec

몽골 자이승 승전탑

작성자: [레벨:16]한국의 산하 IP ADRESS: *.39.120.17 조회 수: 8651

몽골 자이승 승전탑

-징기즈칸의 나라, 몽골 울란바타르(Mongolia Ulaanbaatar)

-이태준 애국지사의 기념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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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기즈칸의 나라, 몽골

 

징기즈칸의 나라, 몽골(Mongolia)은 우리들에게 그리 낯선 나라는 아니다. 우리의 먼 조상들이 몽골 초원을 고향으로 생각하고 있었으며, 광활한 대초원을 가로질러 유럽과 소통을 하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막강한 군사력으로 고려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우리 고대사의 이야기, 징기즈칸의 제국, 고려시대 등과 관련해서 몽골은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지만, 그 이후의 몽골 역사는 굉장히 이질적으로 다가온다.

 

대한제국은 고종 때 종말을 고하면서 일제식민치하로 들어갔다. 36년간의 기나긴 고통과 압박으로 점철된 치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시기 독립을 염원하는 사람들과 압박을 이기지 못한 사람들은 중국, 만주, 러시아, 몽골 등으로 건너갔다. 이곳 몽골 울란바타르에는 이태준 독립운동가의 묘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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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은 청나라 4대 황제인 강희제(재위 1661~1722년) 이후부터 청에 복속되었다가 소련의 볼셰비키혁명(1917년 10월)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아 중국으로부터 독립을 한다. 소련을 종주국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를 1924년에 건국하고, 기존의 몽골문자였던 고유문자(이슬람계 표음문자)를 버리고 러시아 표음문자를 모방하여 새로운 몽골문자를 사용하였다.

 

대한제국과 중국을 병탄한 일본군은 만주를 지나 몽골지역까지 지배영역을 확대해 나간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했다. 일본제국은 중국 내륙으로 진격해 들어갔지만 북쪽의 몽골 국경선 문제(소련이 몽골의 종주국임을 자청하고 있는 상황)로 상당히 민감해 있었다.

 

 

 

자이승 승전탑(자이슨 톨드고이)과 이태준 애국지사 기념공원

 

자이승 승전탑은 소련이 몽골에 기증한 탑이다. 이 탑은 1939년 노몬한 전투(Nomonhan Battle)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몽골이 소련을 지원하여 참전한 전투를 기리기 위해 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 승리와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일환으로 1971년 몽골에게 기증한 것이다.

 

몽골 수도 울란바타르는 몽골 중앙 북부 오르혼강의 지류인 토올강 북안에 위치한 해발 1,300m 고지에 위치한 도시이다. 시내 남쪽으로는 토올(tuul)강이 흐르고, 그 남쪽에 자이승 기념탑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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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몬한 사건(Nomonhan 사건, 한힐골 전투 Battle Of The Khalhin Gol)

 

1937년 일본의 중국 침공으로 일어난 중일전쟁에서 서전을 장식한 일본군은 점차 중국 내륙으로 진격해 들어갔지만 그러는 한편으로 북쪽의 몽골과 소련과의 마찰이 일어나는 것에 상당히 민감해져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1938년 만주의 연해주 국경선에서 일본군과 소련군 사이에 국경 분쟁이 일어났고( 장고봉 사건 ) 1939년 5월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는 외몽골군이 노몬한 벌판을 가르지르는 하르하강을 도하하는 사태가 일어난다. 이에 일본 관동군은 이를 불법 월경행위로 간주하고( 일본측 주장 ) 양측은 교전을 시작했는데 여기에 소련군이 가세했다. 당연히 일본 관동군은 소련군과 외몽골군의 거점을 향해 역공을 개시했는데 이것이 바로 제1차 노몬한 전투다.

 

제2차 노몬한 전투[한힐골 전투(Battle of Khalkhin Gol)]

 

노몬한 전투는 1939년 5월 11일에서 동년 9월 16일까지 약 4개월에 걸쳐 벌어진다. 1939년 9월 3일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기 때문이다. 동월 15일 일본의 도고 대사와 몰로토프 외무인민위원간에 회담이 열리고, 정전협정이 체결된다. 그리고 그 다음 날인 9월 16일 공동발표를 함으로써 4개월에 걸친 노몬한 전투는 종전된다.

몽골은 제2차세계대전 당시 소련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든든한 우군이 되어 독소전쟁에 참전한다. 그러나 몽골은 무기 발전 역사의 저 뒤편에 있었고, 전술 체계 역시 전근대적이었다. 몽골의 용맹한 기마 소총여단이 돌격전을 벌이다가 독일군 기관총 앞에서 전병력이 모두 전사하기도 하였다. 전쟁사에서 유목기마군단의 위용이 현대전에서 위력을 상실하였음을 입증한 사례가 되었다. 세계 제2차대전은 기갑부대와 기갑부대를 지원하는 항공기 전술 운용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시대였으며, 더 이상 기마군단의 전설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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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승 승전탑에서 바라본 울란바타르 전경 사진

 

① 시내 중심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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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서쪽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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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이승 승전탑

 

울란바토르 사방을 둘러싼 4개의 큰 산 가운데 하나인 보크트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자이승 승전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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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탑의 둥근 조형물에는 타일 모자이크로 몽골의 역사적 사실이 그려져 있다. 전통적인 몽골 분위기보다는 사회주의 소련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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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제2차대전 독소전(독일과 소련과의 전쟁) 당시 몽골 국민들이 낸 성금으로 만들어진 소련 전차이다. 이 전차는 실제 베를린까지 진격했던 전차이며, 후에 소련에서 기증하여 전시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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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태준 애국지사 기념공원

 

자이승 승전탑 앞쪽에는 한국인 이태준 애국지사 기념공원이 있다. 세브란스 의과대학 2회 졸업생이었던 이태준 선생은 안창호 선생의 유지를 따라 독립운동을 하던 중 1912년 중국 남경으로 망명한 후 1914년 몽골에 와서 '동의의국'이라는 병원을 세우게 되며, 화류병(매독) 퇴치에 나서면서 명성을 얻는다. 몽골 마지막 황제의 주치의로써 1919년 몽골로부터 '에르데닌오지르'라는 최고의 훈장을 받았지만, 일본과 협력관계에 있던 백군에 의해 38세의 나이로 피살당한다. 한국정부는 1980년 대통령 표창을 수여하였다. 그리고 이태준의사로 인한 한·몽 양국간의 친선을 기념하기 위해 1994년에 몽골 연세친선병원이 설립되고, 2000년 이태준 애국지사 기념공원이 조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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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김광을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위원장 권순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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