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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2009-Dec

전쟁과 시장[37] - 늙은 대영제국과 젊은 일본제국

작성자: [레벨:16]한국의 산하 IP ADRESS: *.39.120.17 조회 수: 6363

전쟁과 시장[37] - 늙은 대영제국과 젊은 일본제국

-변화에 눈감은 오만한 제국, 미래는 없다.

-수세기 동안 세계를 지배했던 대영제국의 거대 전함은 일본 전투기에 맥없이 무너졌다. 오만의 대가였다.

 

 

향료무역을 하던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끔찍한 소식이 전해졌다(1606년 봄). "인도네시아의 반탐항에 해적이 들이닥쳐 우리 영국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배들을 약탈했습니다." " 그런 짓을 저지를 인간은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놈들 밖에 없어!"

 

하지만 범인은 영국인 귀족 에드워드 미셸본 경이었다. 그는 런던상인들에게 왕따를 당해 동인도회사에서 쫓겨난 후 복수의 칼을 갈았고, 제임스왕에게 온갖 아첨을 해서 출항 허가를 받아냈다. 그의 배 타이거호는 240t에 불과한 소형선이었다. 상인들은 내심 그 배가 폭풍 속에 침몰되기를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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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차대전에서 맹위를 떨친 일본 제로기가 출격하고 있다.

 

하지만 무사히 인도네시아 반탐 부근에 도착했다. 당시 향료가 나는 섬들은 네덜란드인들이 모두 장악한 상태였고, 영국 상인들은 부스러기를 얻어먹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화가 났다. "이거 장사도 못해 먹겠어. 그렇다고 빈 배로 돌아가면 파산을 할 수밖에 없어. 이렇게 된 바에야 약탈밖에 길이 없어." 파괴의 진혼곡이 시작됐다.

 

그는 수평선에 화물을 실은 배가 보이면 무엇이든 약탈했다. 국적을 구분하지 않았다.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인도 배를 불문했다. 그의 해적질은 영국인들 전체 이미지에 엄청난 타격을 주었다. "영국인들은 모두 도둑과 다름없다!"

잘나가던 그도 임자를 만났다. 배가 말레이 반도 연안의 바다를 항해하고 있을 때 외침이 들렸다. "거대한 정크선 갑판 위에 80명의 남자들이 칼을 차고 있는데 이상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난장이 체구에 무표정한 얼굴입니다."

 

영국해적과 일본해적의 승부

 

일본해적의 배였다. 중국은 물론 조선 동남아 연안 일대를 약탈하고 다니는 그들은 일본의 지독한 전국시대를 경험하고 임진왜란에 참전한 역전의 노장들이었다. 실직한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해적이 된 자들이었다. 하지만 에드워드는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 그의 눈에는 약탈하기 쉬운 심약한 난장이들로 보였다.

 

에드워드가 "저 배를 약탈하면 돈이 되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왜구의 상륙선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해적이 해적을 노략질하는 싸움이 벌어졌다. 왜구 22명이 영국배에 올라와 번쩍이는 일본도를 휘둘렀다. 칼과 손이 얼마나 빠른지 보이지 않았다. 영국해적들의 시신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영국해적들이 머스킷 총을 장전하기도 전에 난자당했다.

 

하지만 사태가 반전되었다. 에드워드가 컬벌린포에 산탄을 장전했고, 선상 위의 왜구들을 향해 발사했다. 그러자 귀가 먹을 정도로 커다란 굉음이 올리고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렸다. 파편과 판자가 여기저기 흩뿌려졌다.

 

고통에 찬 울부짖음이 들리더니 적막이 찾아왔다. 단 한 번의 포격으로 왜구들의 몸과 팔 다리가 처참히 토막 났다. 영국의 대포는 참으로 위력이 있었다. 타이거호 위의 왜구가 일소되자 에드워드는 일본정크선을 향해 빗발치듯 대포를 쏘아댔다. 정막이 흐를 때까지 그것은 지속됐다. 승리했지만 에드워드와 그의 선원들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상처를 입었고, 해적질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향료전쟁'). 그리고 335년 후 영국과 일본의 해전이 말레이 반도 부근에서 재개됐다.

 

팽창을 멈출 수 없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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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로기의 결정타를 맞고 침몰한 영국 전함 웨일스호.  

 

1930년 미국에서 일어난 경제대공황이 세계로 확산되자 어려움에 봉착한 일본에서 군부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이듬해 만주를 점령했다. 일본은 1937년 7월 7일 베이징 교외의 노구교(蘆溝橋)에서 일본군은 군사행동을 감행했고, 베이징·톈진 상하이와 난징을 점령했다. 미국이 화가 났다.

 

더구나 그해 12월 일본은 난징 앞 양자강에 떠있던 미국의 군함 파라이호를 항공기로 격침시켰다. 그러자 미국은 일본에 대한 철강수출을 중단했다. 1941년 7월 일본이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를 점령했다. 미국은 자국 내 일본재산을 동결시켰고, 일본에 대한 원유수출을 중단했다. 네덜란드와 영국이 이 조치를 따랐다. 베트남에서 중국 산서성에 이르는 10개 성과 주요 도시의 대부분을 점거한 일본은 곤경에 빠졌다. 일본에 18개월 사용할 수 있는 석유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일본은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의 유전지역을 점령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할 판이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영국령 말레이와 싱가포르를 점령해야 하고 직전에 하와이에 있는 미국 태평양 함대를 괴멸해야 했다. 1941년 12월 8일 일본은 하와이를 공습하여 정박해 있는 대부분의 미국 전함과 순양함 등을 격침시켰다. 동시에 일본은 영국의 동양함대와 격돌하게 된다.

 

영국의 자존심 웨일즈호의 침몰

 

프린스 오버 웨일스호가 싱가포르항을 빠져나왔다(12월 8일). 웨일스호 옆에는 순양전함 레펄스, 구축함 4대가 호위하고 있었다. 웨일스는 그해 취역한 영국의 최첨단 전함이었다. 14인치 쿼드포 2문, 14인치 2연장포 1문, 8연장 폼폼포 8문, 대공 기관총 다수와 정찰기 등으로 무장되어 있었다. 일본은 세계최강의 영국동양함대의 출전에 충격을 받았다.

 

다음날 아침 일본의 잠수함은 영국함대의 위치가 탐지했다. 일본이 점령한 베트남 사이공 남방 650㎞ 지점이었다. 11일 오전 11시 일본의 폭격기 8대가 영국함대를 향해 날아왔다. 함대의 대공포가 하늘에 탄막을 형성했다. 폼폼포는 분당 6만 발을 쏟아냈다. 하지만 포탄 1발이 전함 레플스의 포탑에 명중했다.

 

20분 뒤 어뢰를 실은 일본의 뇌격기가 몰려왔다. 8대의 비행기는 웨일스호에 공격을 집중했다. 천하무적 웨일스호는 2발의 어뢰를 맞았고, 좌현으로 13도 기울었다. 1시간 뒤 다른 일본항공기 26대가 상공에 나타났다. 그 중 6대가 웨일스호에 달려들었고, 2대가 격추되었다. 하지만 웨일스호는 3발의 어뢰를 맞았다. 이어 나머지 20대가 좌우에서 레펄스호를 공격하였고, 5발의 어뢰를 명중시켰다. 레펄스는 격침되었고, 1시간 뒤 웨일즈호도 뒤를 이었다. 이로서 영국의 동양함대 주력이 궤멸되었다.

 

오만은 패배를 부른다

 

"수상각하. 우리의 웨일스호와 레펄스호가 격침되었습니다. 일본군 항공기 공격에 의한 피해입니다." 처칠은 수화기를 놓았다. 그는 피눈물을 흘렸다. "동양의 난쟁이들에게 우리 대영제국의 해군이 궤멸되다니. 우리의 아시아의 요충지 싱가포르가 일본의 수중에 들어가고, 곧 인도네시아의 유전지대도 일본이 장악할 것이야. 우리 대영제국은 망했어!"

 

그에게 충격을 더 해준 것은 일본인들이 황인종이었다는데 있다. 1905년 일본이 백인 러시아에 대하여 승리를 거두자 영국인들은 당황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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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양을 왕래하며 해적질을 했던 왜구의 정크선을 그린 그림.

 

영국이 일본에게 전함과 무기를 팔고 전비까지 빌려주었지만 그러했다. 당시 런던에 머물던 중국 혁명의 아버지 손문의 목격담은 이러하다. "뉴스를 접한 영국인들은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백인의 패배는 유익한 것이 아니라 생각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생각의 발로였다."

 

16세기 말 대포로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영국이었다. 대포를 신봉했고 거대한 함포가 달린 전함들을 지속적으로 발전시켰다. 일본 항공기와 격돌하던 그때까지도 전함 거포주의를 숭상했다. 그들은 전함이 항공기에 필적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약자인 일본인들은 무엇이든 받아들였다. 그들은 전함에 대하여 항공기의 우위를 빨리 간파했고, 전투기 개발과 항공모함 건조에 전력을 쏟았다. 일본의 전투기 미쓰비시 제로기는 당시 세계 최고의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해군은 그것을 평가 절하했고, 비참한 패배를 불렀다. 대포로 흥한 대영제국은 거포를 실은 전함에 집착하다 망했다. 결국 세계 2차 대전에서 영국이 승전국이 되고 일본이 패전국이 되었다. 하지만 오만한 영국은 과거의 영광을 다시 회복할 수 없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던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으로 다시 부활했다.

 

▶반탐(Bantam)=인도네시아 자바섬 북서부 해안에 있는 도시. 반탐만 내만에 위치하며, 순다 해협을 사이에 두고, 수마트라섬과 접하는 지리적 위치 때문에 자카르타보다 일찍이 발달하였고, 역사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16세기 후반에는 술탄왕국의 기지로 번영했으며, 특히 향신료무역이 성하여, 동남아시아 각지에서 모여든 이주자로 붐볐다.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등이 인도네시아 지역으로 진출할 때에는 우선 이곳에 내항(來航)했었다.

 

▶동인도회사=17세기 초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이 동양에 대한 독점무역권을 부여받아 동인도에 설립한 여러 회사다. 각국의 동인도회사는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커피·사탕·면직물 등의 무역독점권을 둘러싸고 경쟁했다. 1602년 설립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인도네시아의 여러 섬을 정복한 뒤 특산품을 강제로 재배하게 해서 사들여 향신료 무역을 독점했다. 그러나 1652년부터 영국-네덜란드전쟁이 계속됐고, 심한 타격을 입은 네덜란드는 영국과의 상업전쟁에서도 지게 된다. 또 18세기 이후 향신료무역이 부진하게 되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식민지경영을 주로 했으며, 1799년에는 영토를 본국정부에 이양하고 해산했다.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서영교(충남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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