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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2009-Nov

3부 세계1차대전, 그 위대했던 전쟁

작성자: [레벨:30]조현상 IP ADRESS: *.180.69.60 조회 수: 7803

미국의 선전포고는 1917년 4월6일에 시작되었다.

 

이들은 곧바로 200만의 병력을 프랑스에 투입을 시켰는데, 미군자체가 사실상 1차대전때에는 약체였기때문에 1차대전때 혁혁한 공을 세웠기보다는, 단지 수가많아서 연합군의 사기를 높혀주었던 사람들이라고도 말할수있다.

 

이들은 참호속에서 미친듯이 같혀서 희망을 잃고있는 영국군과 프랑스군에게 엄청난 힘이 되었고, 전쟁으로 완전히 탈진이 되어버린 연합군들에게 따듯한 손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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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7년 프랑스의 미군 중기관총팀.

 

단지 이들의 참전 하나가 연합군들의 사기를 엄청나게 늘려주었다.

이들이 프랑스에 상륙한 이래에 정체되었던 북프랑스의 전선은 점점 뚫리기 시작하였다.

 

독일은 이에 놀라서, 황급히 서부전선으로 더욱 병력을 보냈으나, 이미 때는 늦은상태였다.

 

한편 중동에서는 1916년부터 오스만 제국의 붕괴는 거의 확실히 되고있었다. 오스만제국군이 승승장구하여 러시아의 남부, 코카서스를 향해 진격하는데 성공하였으나 Enver Pasha가 이끄는 러시아의 부대에 의해서 굉장한 타격을 받고 후퇴하였고, 1916년 4월초에는 영국군이 아랍군과 함께 터키의 바그다드(현재 이라크의 수도) 로 진격하여서 1917년, 바그다드의 터키군에게 항복을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렇게 외롭게 터키가 싸우는동안, 독일은 서부전선의 가장 강력한 방어선인 'Hindenbrug Line(힌덴브루크 방어선) ' 으로 2월에 후퇴하였다.  독일은 미국이 계속해서 서부전선에 매달 20만명씩 보내면 더이상은 감당할수 없다는것을 알게되자, 독일은 미국과 사이가 별로 않좋으면서도 독일과는 약간 우호적인 국가를 찾았다.

 

그 나라는 바로 '멕시코' 였다.  독일은 멕시코에게 전쟁을 자극하게 하여서 미국과의 전쟁을 부추기기 시작하였다.  멕시코측은 평소 미국과 사이도 별로 않좋고,독일이 약간의 지원을 해준다기에 솔깃하였지만, 결국 미국측에서 암호해독가들이 이것을 해독함에 따라 멕시코 정부에 압력을 넣어, 실패하고 말았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이참에 전선을 엎고자, 유래없는 대 공세를 펼쳤는데 '니벨르' 공세라 불리는 이 전투는 치열한 전투끝에 결국 프랑스가 대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후에, 프랑스는 몇번 더 독일군과 부딧혔지만, 그때마다 프랑스는 자꾸만 패배를 하공말았다. 그러자, 1917년 4월 29일에 프랑스군들이 갑자기 반란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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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겨운 서부전선의 참호속에서 지칠대로 지쳐버린 프랑스군들의 모습.

 

 

사실 이 반란은 그렇게 큰게 아니라서 쉽게 진압이 되었는데, 이것은 진압으로 끝날게 아니라, 유래없는 처음으로 군인들이 전쟁터에서 반란을 일으킨 사건이 되었다.

  

6월에는 그리스가 터키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연합군에 참여하였고, 동맹국의 상황은 불리하게 되었다.

남부의 그리스군, 북부의 루마니아군, 서부의 세르비아군은 힘을합쳐 불가리아를 공격했고, 불가리아는 이들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있었다.

  

한편, 러시아 내부에서는 이상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몇년동안 배고픔에 굶주린 농민들이 분노한것이다.  이들은 단체로 왕궁앞으로 몰려가 차르(러시아의 황제) 니콜라스2세에게 당장 전쟁을 중단하고  시민들에게 음식을 배급해달라고 아우성을질렀다. 그렇지만, 니콜라스2세는 이때마다 항상 군대를 보내 이들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이때, 이 군중속에는 레닌이라는 공산주의자도 있었는데 후에 이는 시민들의 대표로 선발되기에 이르렀다.  레닌은 시민들을 대표로 니콜라스2세에게 다시한번 항의했지만, 역시 무력으로 진압당하고말았다. 그리고 몇일뒤, 레닌은 시민들로 이루어진 공산군대를 이끌어 니콜라스의 군대에 저항했다. 니콜라스의 군대는 처음에는 속속밀리는가 싶더니, 화가 끝까지난 니콜라스는 결국 중포와 야포를 이용해서 시민군대를 짓밟았다.

 

그리고, 이때 레닌은 니콜라스의 왕정군대에게 잡히는데 니콜라스는 이를 죽이지않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보내버린다.

레닌이 시베리아형을 받은것을 알게된 시민들은 더욱 격분했고, 왕실군대와  더더욱 치열한 전쟁을 치루게 된다.

 

이렇게 혼란이 계속될수록 러시아전선에 있던 군인들마저 탈영해, 시민들 편에 들어갔고 왕실군대는 점점 그 세력이 줄어들고 있었다. 독일이 러시아 내부로 깊숙히 들어왔을때쯤, 혁명을 일으킬 때가 된것을 알게된 레닌은 10월, 독일측에 비밀스럽게 편지를 하나 보낸다.

 

그 내용은, '러시아에서 곧 혁명이 일어나서 정부를 뒤엎을것이니 나를 모스크바로 보내주는데  도움을 준다면 그 어떤 조약이라도 감수하여서, 평화협정을 맺고싶은데, 어떻겠소 ' 라는내용이다.

 

이 편지를 받고, 독일측은 흔쾌히 승락했다. 결국 시베리아로 비밀스럽게 복엽기를 한대 보내, 레닌이 시베리아를 탈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레닌은 다시 민중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모스크바에 입성했다. 높고낮음이 공존하지 않는곳에서 인민들을 위한 낙원을 건설하자는 뜻으로, '소비에트 연방'  국가를 세우기 위해 이들은 왕실군대를 괴멸시키고 왕궁으로 쳐들어갔다.

 

니콜라스2세는 왕궁을 탈출하는데 실패했고, 시민군대에게 붙잡혔다. 이들과 이들의 가족은 전부 지하감옥에 수감되었고 이로써 10월혁명이 성공되, '러시아제국' 이란 국가가 붕괴되고 레닌을 주축으로 '소비에트 연방공화국' 이 탄생하게 된다.

독일은 러시아에 평화협정을하기 위해선 폴란드, 핀란드, 그리고 전쟁배상금과  우크라이나를 독일에 넘기라는 조약을 작성했고, 레닌은 어쩔수없이 이 조약에 서명을 했다.

이 조약으로, 핀란드, 폴란드가 새롭게 러시아에서 독립을 하였고, 막대한 전쟁배상금까지 독일에게 넘기고 말았다.

 

이때가 12월이었다.

  

이렇게, 러시아제국이 무너지고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이라는 새로운 국가가 세워짐에따라 러시아는 연합군에서 탈퇴하는데, 소비에트가 세워진지 얼마 되지않아 지하감옥에 수감되어있던 니콜라스2세의 가족들은,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가족단체사진을

찍겠다는 공산당원들의 말을 믿고, 가족전부가 어느 방에 들어가게되는데,  그 방안에 모두가 들어간지 단 5초만에, 수백발의 기관총소리와 함께 니콜라스2세는 물론,  그의 자식, 부모님, 친척등. 모조리 처형당하고 말았다.

 

 

 

한편, 독일은 이때를 틈타 동부전선으로 보냈던 병력들을 전부 서부전선으로 옮겼으나,  이미 연합군의 세력은 커질대로 커져있었다.

 

 

드디어 1918년.

전세는 완전히 동맹국들에게 않좋게 변해버렸다.

5월에는 미군이 Cantigny를 공격하여서 독일을 대패시켰고, 다음달에는 미 3군과 프랑스군, 영국군이 다시 기운을 차려서 계속해서 힌덴브루크선을 공격하였다.

 

이런 공격은 결국 힌덴브루크선에 구멍을 내는데 성공하였고,  힌덴브루크선을 빠져나온 독일군들은 도망가기 급급하였다.

6월에는 의외로 이탈리아군들이 Piave 전선에서 오스트리아군을 이기는데도 성공하였다. 서부전선에서는 벨기에군이 이프르를 공격하였다.

 

중동전선은 더욱않좋았다. 터키는 팔레스타인과 요르단, 그리고 예루살렘을 빼앗기면서 점점 그 영토가 줄어가고 있었으며

그리스와 세르비아군과 10월혁명이 일어나기전 계속해서 공격해왔던 러시아군의 공격때문에 황폐해져버린 불가리아는 결국 9월29일에 동맹국중 처음으로 항복하였다. 

 

남은 동맹국들은 오스만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그리고 독일이었다.  터키는 끝까지 싸워보려했지만, 결국 터키본토로 들어가게된 영국군을 감당하지 못하여 10월에 항복하고말았다.

든든했던 오스만제국이 무너지자, 사기가 뚝뚝떨어져버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군역시 겁을 집어먹고 오스만제국이 항복한지 단 한달만에 항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은 동맹국은 독일 혼자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아주 악랄하게 저항하였다.  미군들도 지쳐갔고, 프랑스,영국, 그리고 모든 연합군들조차 독일군의 악랄한 저항에

지쳐가고있었다.

  

결국 1918년 11월11일, 독일은 마침내 항복을 하였고 독일의 빌헬름황제는 네덜란드로 유배당하고 말았다.  전쟁은 끝이 난것같았지만 연합군들은 더욱 골치아픈 사건에 직면하였다.

'반란' 이었다.

 

그동안 계속해서 전쟁을 해왔던 영국군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다.  1918년 프랑스 '칼레' 에 머물던 제 51하이랜더 사단은이 처음으로 영국군내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는 또 곳 진압되었고 다수의 주동자들이 바다에 수장되었고, 부대원 전부가 진압되거나 군사재판을 받았다.

 

12월 9일과 10일에는 캐나다 왕립포병대의 제대 몇개가 연대본부를 불태워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났고, 이 반란의 바람을 타서 12월 21과 27일에는 탱크사단에서 몇개 대대가 파업에 돌입하였다.

 

벨기에에 주둔중이던 한 영국군 대대는 몇년동안 계속해서 보급품이 엉터리로 오고, 제때제때 오지않았으며, 본부에서는 이의제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화가나서 벨기에 여기저기를 약탈하였으며, 심지어 서부영화에 나오는 한장면처럼  기차를 세우게 한후, 민간인들은 다치게 하거나 금품을 다 빼가고, 도시 한복판으로 들어가 자동차들을 훔쳤다.

 

 

추운겨울, 북프랑스에서 불로뉴에서 24Km 떨어진 에타플의 한기지에서는  영국군의 엄청난 반란이 일어났다.  연대장, 대대장같은 사령관들은 사기가 완전히 바닥이 나버린 병사들과, 신참들, 그리고 심지어 부상병들까지 한 투우장에 넣어두고 눈오는날 아주 고된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이런 고된훈련은 휴식을 받아보지못한 불쌍한 장병들에게는 참을수없는 모욕이었기에 몇몇 주동자들이 갑자기 교관을 때려눕히고 수천명의 병사들이 구호와 노래를 부르면서 투우장을 빠져나왔다.

 

이 광경을 목격한 야전 헌병대의 한명이 주동자중 한명에게 총을 발사하고, 헌병대들이 투우장을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였고, 사령관이 높은곳에서 소리쳤다.

 

이 투우장에 있었던 생존자, 한 상병인 '헨리 윌리엄슨' 은 그때의 장면을 아직 못잊고 있다고 했다.  사령관은 그들에게 근엄한 말투로 이렇게 소리쳤다.

 

「 제군들이 영국인인가, 아니면 망나니 오합지졸인가? 」

 

그러나 어떤 한사람이 입닥치라고 소리를 쳤고, 갑자기 무기를 들더니  사령관 옆의 호위대들을 삽과 망치로 때리기 시작했고, 이때 사령관역시 다리에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러나, 입구에 설치되어있던 영국군 기관총부대들이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공중으로 총을 발사하였고, 다시 진압부대들이 들이닥치면서 무장해제를 시켰다.

 

가엾은 수천명의 영국군들은 모두 손목에 수갑을 찬채, 전부 총살당하고 말았다.  

 

프랑스군들 부대에서도 만만치 않았다.

1918년 이 년도에만 총 5만명이 탈영을 하고, 총기사고가 일어났고, 반란이 끝없이 일어났다.

심지어 자살공격을 명령하는 중대장에게 총을 발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프랑스의 한 부대에서 일어났던 이야기이다.

 

계속이어졌던 공격으로 중대원들의 대다수를 잃은 한 프랑스 중대가, 새로운 보충병들을 넣고 새롭게 편성되어 최전방에 투입되려고 기차를 타고, 벨기에에 도착할때쯤, 기차에서 내리라는 장교의 말을 아무도 듣지 않았다. 장교가 계속해서, 내리라고 위협을 하자, 전쟁경험이 많은 한 베테랑 프랑스부사관이 말했다.

 

" 우리는 맨손으로 적의 기관총세례에 맞서 공격할만큼 바보가 아니라고. "

 

그러자, 옆에있던 병사들이 모두가 참았던 분노를 터뜨렸고, 기차를 다시 돌려 프랑스로 보내달라고 항의하기 시작했다.

결국 장교는 대항했던 부사관을 포함에 열명을 그자리에서 처형시켰다.  그리고 강제로 이 부대를 기차에서 내리게 한후, 최전선으로 옮겼다. 그리고 독일군참호를 향한 이 중대의 공세가 있기 하루전, 부대원들의 절반이 넘는수가 탈영을 하고 말았다.

  

독일군 부대에서도 두달만에 409건의 탈영병 발생이 생겼고,  엄청난 숫자가 미군에 투항을 하였다.

그 수 만 해도 엄청난 숫자였다.

 

한 독일군 장교는 자신의 중대원들을 보며 본부에 이렇게 편지를 썼다. " 1918년, 상황은 않좋아지고 있고 이번달만 벌써 무수히 셀수없을만큼 탈영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간혹 탈영한자들을 군법에 넘기고 있지만, 이들은 군법에서 중대 재편성보다는  차라리 처형을 원하고있습니다. 중대원들 대다수는 무기를 잃어버렸고, 자신의 소총과 무기가  어디갔는지도 모를정도로 지쳐버렸습니다. 공격능력은 민병대와 다를바 없고, 이들을 데리고는 전투가 절대 불가능합니다. "

 

 

포격이 일어날때마다 움찔거리고 본능적으로 엎드리며 피할곳을 찾던 병사들은 이제 스스로가 죽음을 자처하며 참호안으로 떨어지는 폭탄을 향해 두팔을 벌리기도 하고, 체념에 빠진 병사들은 아예 그자리에서 울어버리기시작했다.

몇몇병사들은 밤에 스스로 참호 디딤판을 밟고 올라가, 적 저격수의 타겟이 되어서 죽기를 희망하였다.  어떤병사들은, 숙소에서 자신의 입에 총을 발사하여 사망하고 어떤병사는 칼로 스스로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후방병원으로 호송을 희망했다.

 

 

 

세계1차대전은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전쟁이었다.

그래서 The Great war 라고 역사는 부르는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애도해야하고 기억해야한다.

 

포격속에서 흐느꼈던 병사들,  포탄충격으로 정신병동에 수용되어 영문모를 말을 찌껄여되었던 병사들,  진흙 수렁에 빠져서 죽은병사들, 찢어진 몸통밖으로 흘러나오는 내장을 그저 붙들고 있던  병사들까지.  우리는 이들의 희생을 기억해야한다.

 

 

 

에즈라 파운드의 시이다.

 

「 누구는 조국을 위해 죽었다,

그 죽음은 '달콤하지' 도 않았고 '품위' 도 없었다.

그들은 선배들의 거짓말을 믿고 지옥으로 걸어들어갔다.

이제 고국으로 돌아온 그들은 그 거짓말을 믿지 않는다.

그 많은 기만 행위들을 낡은 거짓말들과 새로운 오명을. 」

 

 

그리고 마지막으로 보여줄 글은 이프르공세때 전사한 한 장교시신에서 발견된 편지이다.

 

「 피흘리며 쓰러진 전우들을 뒤로 하고 연기와 잔해를 가로질러 기어오릅니다.

작렬하는 포화의 한가운데에서 이리저리 헤매며 피할곳을 찾습니다.

매 순간 죽음이 엄습하지요. 당신은 이곳이 어떤곳인지 모를겁니다.

이곳은 인간의 인내력을 끊임없이 시험하는 곳이랍니다.

이곳은 피가튀고, 인간의 시신이 널브러진 곳이지요.

이곳은 영웅적 용기가 발휘되는 땅이고, 죽음에 대한 충성까지도 난무하는곳이랍니다.. 」

 

 

 

 

 

제 1차세계대전, 그 위대했던 전쟁은 3화로 끝을 내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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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세계1차대전, 그 위대했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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