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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Mar
서산 해미읍성(海美邑城) 2
작성자:
한국의 산하
IP ADRESS: *.139.31.158 조회 수: 9193
동문이 보이고...
동문 잠양루다.
안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밖은 홍예식이지만 안쪽은 평거식이다.
북쪽의 언덕으로 성곽이 올라간다.
뒤돌아 본 동문 모습.
북쪽은 소나무 숲으로 덮혀 있다.
청허정이다. 망루의 역할을 했는지 영조때부터 있었다 한다.
하지만 지금 건물은 철근 콘크리트다.
소나무 숲 사이로 길이 호젓하다.
소나무 숲을 따라, 성곽이 북에서 서쪽으로 이어진다.

북쪽에 있는 암문.
암문에서 성곽은 서문쪽으로 내려선다.
암문 안쪽 모습.
잠시 소나무 숲을 거닐어 본다.

서문으로 향한다.

서문도 다른 문과 마찬가지로, 안쪽은 평거식으로 되어 있다.
서문에서 성곽이 큰 원을 그리며 남문으로 이어진다.
성 한가운데는 관헌의 모습이 보이고...
포루(砲樓)다.
진남문과 2개의 포루(砲樓).

진남문에 도착이다.
성 안쪽 안내도
관아의 문 모습

문 안으로 들어서면 동헌이다.
선조12년 (1579)에는 이순신 장군이 이곳에서 10개월간 근무 했었다.
동헌 뒤로는 책실과 부속건물이다.
모두 온돌 시설이 되어 있었다.
동헌 옆에 내아 건물
그리고 객사다.
궐 자를 새긴 위패를 모신곳이며, 양 옆의 익실은 상부에서 파견된 관리의 숙소로도 사용된다.

서문밖의 자리개 돌.
천주교를 믿는사람들을 병사들이 들어올려 여기에 내려치면, 머리가 깨어져 죽었다 한다.
1790년부터 1880년까지 이곳에서 약 2,000명의 천주교 신자가 이외에도 교수형이나 겨울에 얼려죽였다하니...
참고
해미읍성내에 존재하고 있었던 시설물을 여러 사서 및 지리지를 통해 살펴 볼 수 있는데 다음과 같다.
①《朝鮮王朝實錄》 文宗元年九月
"海美縣內廂城周回三千三百五十二尺女墻高三尺敵臺十八內十六未築門四無擁城女墻六白六十八垓字周回三千六白二十六尺城內泉三"
(해미현 내상성은 둘레가 3352척으로 여장 높이는 3척이다. 적대 18곳 중에서 16곳은 아직 축조되지 않았으며 문은 4개소인데 옹성은 없다. 여장은 668개, 해자의 둘레는 3626척이고, 성내에는 샘이 3개 있다. )
②《新增東國與地勝覽》 海美縣 關防條
"兵馬節度使營在縣東三里有石城周三千七百十二尺高十五尺內有三井又有軍倉"
(병마절도사영이 현의 동쪽 3리에 있는데 석성으로 둘레가 3172척이고 성 높이가 15척이다. 성내에는 우물이 3개 있으며 또 군창이 있다.)
③《忠淸道邑誌》 海美縣 城池縣城條
"周圍六千六百三十尺高十三尺治城三百八十堞瓮城二處 樓暑樓無南門虹霓三間二層樓東門三間西門三間北門西門三間北門無枳木繞城城內有泉井六庫濠池無"
(성 둘레가 6630척이고 높이는 13척이다. 치성은 380첩, 옹성은 2곳에 있으나, 초루와 포루는 없다. 남문은 3칸으로 홍예로 된 2층 누각이며 동문 3칸, 서문은 3칸인데 비해 북문은 없다. 성둘레가 탱자나무가 빙 둘러싸고 있고 성내에는 샘과 우물 6개가 있으나 창고와 호지는 없다.)
④《東國與地志》 海美縣 城郭縣城條
"石築周三千一百七十二尺東南有門三井本兵馬節度使營城"
(석축으로 둘레는 3172척이고 동남에는 문이 있고 성내에는 3개의 우물이 있다. 본래는 병마절도사영성이다.)
현재 해미읍성의 주변으로 같은 목적하에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읍성으로는 서산읍성, 태안읍성, 당진읍성, 홍주읍성등을 들 수 있다.
특징과 연혁 (대략 달걀 모양과 비슷하다). 이런 형태의 성은 한반도에서는 찾기 힘들다.
1417년(태종 17년) - 축성 시작.
1421년(세종 3년) - 축성 완료. 이후 230여 년간 종 2품의 병마절도사가 주둔하였다.
1651년(효종 2년) - 병마절도사가 청주로 이전하면서 해미현 관아가 옮겨와 해미읍성이 되고 문무를 겸한 겸영장이 배치되며 호서좌영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1963년1월 21일 사적 116호로 지정됨 1970년대부터 복원공사가 시작 되었으며 성내 건물을 철거하고 동헌, 객사, 내아 등을 복원하였다.
1914년 일제 강점기, 군현제가 폐지되고 해미현이 서산군에 통합되면서 읍성은 폐지되었다. 폐지 이후에는 성안에 면사무소, 초등학교 등 기관과 민가가 지어짐
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