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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Apr
강화의 돈대(墩臺) 7 - 화도돈대, 용당돈대, 좌강돈대, 갑곶돈대
작성자:
한국의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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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화도돈대(花島墩臺) 종 목 : 문화재자료 제17호 (강화군) 명 칭 : 화도돈대(花島墩臺) 분 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성/ 성곽시설 수량/면적 : 일원 지 정 일 : 1999.03.29 소 재 지 : 인천 강화군 선원면 연리 54 시 대 : 조선시대 소 유 자 : 강화군 관 리 자 : 강화군 상 세 문 의 : 인천광역시 강화군 문화관광과 032-930-3626 선원면에서 강화읍 방향으로 해안도로를 따라 오두돈대에서 약 1.1㎞정도 더 가다보면 우측으로 해안쪽으로 돌출된 야산이 있다. 유적은 이 야산의 평탄지에 조성되어 있다. 花島墩臺는 강화 53돈대중의 하나로 중영우부좌사의 후방돈대와 남쪽의 오두돈대와의 사이에 위치한 돈대로서 동서 32m, 남북 32m 규모의 방형돈대이다. 최근까지 석축이 잘 남아 있었지만 근래에 들어 훼손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바다와 접한 동쪽은 인공시설물에 의해 훼손된 상태이고, 내부는 과수원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남쪽에는 연못이 조성되어 있는 등 현상변경이 심한 상태이다. 포좌와 출입구의 위치는 추정이 불가능하다. 화도돈 주위로 외성이 축조되어 있다.화도돈은 내부 과수원으로 사용되어 있어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없다. 이 돈대 주위로 외성이 축조되어 있다. 이 돈대는 석벽터를 기준으로 볼 때 방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서쪽에는 새로이 쌓은 이질적인 석축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의 돈대와는 무관한 것으로 보인다. 돈대지 남서쪽에 화도 수문 개축비가 있다. 과거에는 이 수문을 통하여 큰 배가 드나들 수 있었다고 한다. 성곽은 거의 없는 상태다.
좌우측으로 성곽의 뿌리는 잘 남아 있다.
김포쪽 모습.
20. 용당돈대(龍堂墩臺) 가리산돈대·좌강돈대와 함께 용진진에 속해있으며, 근래에 복원되었다. 너무 깔끔하게 복원되어, 마치 테마공원같은 느낌이다.
정면 모습.
옆쪽 포구.
안으로 들어가 본다.
김포방향으로 3개의 포구가 있다.
21. 좌강돈대(左岡墩臺) 소재지 : 선원면 신정리 복원된 용진진의 우측에 성벽으로 연결된 돈대이다. 左岡墩臺는 용진 마을의 비교적 낮은 평지상의 독립된 고지에 설치된 돈대이다. 좌강돈대는 용진진의 관할하에 있던 돈대로서 중용우부좌사의 중앙초소였다. 현재 좌강돈대는 돈대면석이 1-2단이 남아있던 것을 최근 복원한 것으로 서쪽으로 출입문이 서쪽으로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고, 동쪽으로 4좌의 포문이 배치되어 있다. 좌강돈은 선원면 연리 가리뚝 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아래에는 용당돈이 있다. 별칭으로는 용진돈대이다. 이 돈대는 한 변이 40m 정도의 정방형이지만 그 모퉁이는 곡선의 형태이다. 이것은 토축에서 생기는 토압을 완화시키기 위한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수로 측면의 매우 낮은 구릉에 위치하고 있다. 이것은 수로를 따라 침입하는 외적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되었던 듯하다.
용진진의 문루, 참경루에서 연결된다.
밖으로 나가본다.
바로앞에 문수산성이 보이고...
22. 갑곶돈대(甲串墩臺) 소 재 지 :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1020 문 화 재 : 사적 제306호 축 조 : 숙종 5년 (679 년) 강화역사관內 利涉亭을 지나 바다로 돌출한 좁은 육지의 첨단부에 위치한 강화53돈대 중 하나로 현재 면적은 45.339㎡이다. 북쪽으로는 갑곶나루가 위치하고 있어서 강화와 김포의 유일한 통로로 활용되어 왔으나 현재는 그 자취를 찾을 수 없다. 甲串의 유래는 丙子胡亂때 淸군사가 월곶에 이르러 거센 물길에 강을 건너지 못하자 안타까워하며 탄식한데서 비록 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6년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정비되었다. 甲串墩臺의 위치에 대한 이견으로는 현재의 舊강화대고 입구 부근이 갑곶돈대라는 조사의견도 있다. 1232년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이후 1270년까지 몽고와의 줄기찬 항전을 계속하며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강화의 관문으로 적진을 살필 수 있는 진해루가 있었으며 물살 건너편의 문수산성 서쪽 성문인 취예루를 마주하고 있었다. 갑곶돈은 1656년 인천의 제물진에 소속되었다가 숙종 5년에 돈으로 축조되었다. 염주돈·제승돈·망해돈과 8문의 대포를 설치한 갑곶포대가 갑곶돈에 소속되었고 남쪽에 수문이 있었으며 강화외성과 연결되었다. 1866년 9월 식민지의 기치를 뒷전에 숨기도 천주교도를 박해한다는 이유로 강화를 침략, 도굴과 약탈을 일삼았던 병인양요를 맞아 프랑스군 600명과 격렬한 전쟁을 치른 곳도 이곳이다. 프랑스군은 19월 3일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정족산성 전투에서 섬멸된다. 갑곶돈의 일부가 1977년 강화의 다른 전적지와 복원되면서 대포와 소포 2문 등을 새로 만들어 설치·전시하고 있는데 그 갑곶돈 자리에 강화역사관이 들어서 있는 것은 퍽 의미 있는 일이다.
이곳엔 강화도에 산재해 있는 각종 비석을 모아 두었다.
참고
강화도의 53돈대를 다 찾을수는 없겠지만, 어느것이 남아있고, 어느곳이 군부대내에있어 들어갈수 없는지 정도의 정보는 쉽게 얻을수 있어야한다. 물론 돈대의 정학한위치도 함께 말이다. 그런 정보가 없어서 돈대 찾는데 애를 먹었다. 다행히 자료정리하는중에 다음과같은 도표를 발견하였다. 내가 놓친 돈대는 계룡돈대 정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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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CN 국방시민연대 전쟁사위원회 연구위원 배용순 |